보마의 뜻: 내 것이 아닌 것을 대하는 방법
boma’s way: How to deal with what does not belong to you
글: 피오나 위언(Fiona Weern)
번역: 유지원
boma는 하나이고 또 여럿이다. Rebercca လက် and The Cost에서는 기획과 디스플레이, Collection 제공은 WHITE MEN DECORATION & boma가 담당했고 비물질 제공은 fldjf studio가, 오프닝 리셉션은 boma가 수고해주었지만, 주인공은 ‘The False Sacrifice’라는 향수를 만든 Rebercca, 혹은 ‘R’이다. dancer qhak라든지 fldjf studio라든지 WHITE MEN DECORATION & boma 등은 boma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 그러니까 이미 그의 일부인 어떤 속성에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였는데 R은 사뭇 다르다. 어쩌면 R에 대한 묘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거리감이 더 구체적으로 만져지는지도 모르겠다. R에 대해서는 남성형 대명사가 부여되고, 손끝부터 팔의 중간까지 없다는 신체의 결핍이 명시되고, 피부색은 검은색에 가깝도록 어둡고 눈동자는 에메랄드색이라는 설정이 공개되니 그런 몸을 갖지 않은 boma와의 괴리를 감수해야만 한다. 게다가 R은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나 체조선수로 활동하다가 손과 팔을 잃었고 아테네에서 향수를 배웠고 현재는 도쿄에서 작업하는 사람으로, 이국적이지만 달리 개연성은 없는 이력을 갖추었다.
R은 boma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모여든 빈칸이자 반사체이다. 그러한 R, boma일수 없으며 boma가 가질 수도 없는 그는 가질 수 없고 될 수도 없는 빛을 잠시 가지거나 되어보기 위해 사용되는 여러 반사체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시선을 자신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분산한다. 전시의 팜플렛에 적혀 있는 이야기 “The FSC Presentation Night”를 따르면 R은 향수를 런칭하는 자리에 손으로 자신이 가지지 않을/못할 것을 touch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은 백화점에서 인사하는 사람, 지게로 일하며 돌을 자르고 쌓는 사람, 전단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 빌딩을 청소하는 사람 (그는 걸레를 가지고 빌딩을 만진다.), 어느 호텔 문 앞에 서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차를 주차하는 사람, 폐지를 만지고 쌓는 사람, 물을 따르는 사람, 한 편의점의 판매원-그는 머리칼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정장 구두를 신고 일하며 외국인이다-, 그리고 마사지하는 사람 등이다.” 순수하고 무지하고 자신의 결핍을 성찰하지 못한 채 없는 팔을 휘두르는 R, 손이 없고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 R은 분명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지만, 정작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스킨쉽을 하고 향을 얻고 에너지를 흩어놓는 것은 거의 매일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무언가를 touch 하는 guest이다. 결핍으로 인한 reflection는 R의 손을 비롯하여 없는 것을 더 의식하도록 하고, 다시 태어나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취하는 gesture를 상기한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실용적이지도 않고 많이 비싸지도 않은 물건을 공연히 훔쳐 가는 일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로서 인정을 받던 위노나 라이더가 엉뚱하게 백화점에서 수천 불 상당의 물건을 훔치다가 잡혀버린 일, 파는 물건인 줄 모르고 자루에 담긴 사탕을 한 움큼 집어와 맛있게 먹어버린 바람에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도 돌려주지 못한 일, 빛이 reflect되어 영롱한 사물은 기껏 몇백원으로 그 가치가 책정되기에 너무 아름다운 것이라 값을 치르지 않기로 선택하는 일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단순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단순하고 innocent 한 경우이므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만족해도 괜찮겠다)
가질 수 없는 견고한 것을 아주 간단한 gesture로 take하는 일의 원류는 아무래도 성경에 있다. 여호수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 팔레스타인에 해당하고 그때는 가나안이라고 불렀던 비옥하고 막강한 나라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은 단단하게 버티고 있던 여리고성 주위를 하루에 한 바퀴씩, 총 여섯 번 돈 다음 일곱번째 날이 되거든 제사장은 나팔을 불고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치라고 명령한다. 함락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성채는 신의 말대로 매일 한 바퀴씩 행진하고 마지막 날에 큰 소리의 외침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본디 터무니 없이 solid한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이나 petty한 것으로 승부를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거의 유일하고도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때 대상의 주위를 빙빙 도는 것 외에도 여러 전략이 쓰이는데, 팜플렛이 소개하는 ‘The False Sacrifice 2017’ 프레젠테이션이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인 양 믿는 것도 꽤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boma는 이러한 용도로 더 간편한 장치들을 구비해둔다. 소유주가 있는 땅에 하늘색 ribbon을 도르르 풀어내면 어쩐지 boma의 것이 되는 것 같지 않던가? 철장으로 포장된 국제갤러리의 외관을 골드빛 리본으로 둘렀을 때, 순간적으로 boma가 건물을 산책시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 Rebercca가 만든 향수를 쇼케이스 중인 갤러리의 바닥에 먹거나 바르다가 흘린 파란 물질이 떨어지고, 그것을 채 치우지 못했거나 어설프게 문지른 자국과 그 주위 면적은 당연하다는 듯 boma의 영역이 되지 않는가? 바닥에 흘린 Rebercca blue paint는 그 장소를 자신의 것으로 claim하는 일에 다름없었다. boma의 touch도 효과적인 tool이다. sky는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이미지를 길게 확장하여 모니터에 띄우고 마우스의 커서를 굴리며 그것을 만질 때, boma는 sky를 차지하고야 마는 것이다. 스크롤을 내리는 gesture는 sky와 상관없는 실내 공간에서도 약간의 망상이나 조금의 강박과 함께 효험을 획득한다. 퍼포먼스나 사진, 심지어 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도시의 번쩍이는 대형 건물은 또 어떤가? boma는 외부인을 위한 로비가 딸린 호텔이든 입구부터 출입증을 찍어야 하는 사옥이든 건물의 소위 ‘건축적’ 요소, 그러니까 특유의 구조나 스케일, 용도에 집중하기보다 빛을 반사하는 하나의 사물로써 대형 건물을 아끼는 것 같다. 오히려 유리로 된 문진과 같이 반짝이고 pretty하고 갖고 싶은 충동과 건물에 대한 애착은 별로 멀지 않다. 그러니 적법한 방법으로 건물에 들어가는 길을 알 필요는 없다. boma가 마주치고, 협상하고, 도망 다녀야 할 관문은 건물을 가장 가까이서 만지지만 그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boma가 입구에 괜히 서 있거나 스티커를 붙이거나 리본을 풀거나 하는 gesture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손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처구니 없이 solid한 것이 light한 gesture로 claim되는 것과 반대로 아주 fragile하여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것이 무지막지한 힘에도 넘어가지 않는 일도 왕왕 있을 것이다. 훔칠 수는 있지만 돈주고 살 수 없는 마음도 살면서 몇 마주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름다운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직 못 된다.)
boma의 Rebercca လက် and The Cost는 향수를 판다는 명목하에 Gallery SP 전체를 일종의 매체로 삼아서 가져버린 사건에 가깝다. 갤러리를 가지지 않은 boma는 일련의 gesture와 paint, 그리고 멀리 travel할 수 있는 향을 갤러리에 진동하도록 하여 더 밀접하게 비릿하고, 견딜 수 없이 지끈지끈한 일을 벌인 것이다. R이 토해낸 글리터와 벽에 스민 향과 바닥에 흘린 파란 페인트는 유난히 끈질겨서 나의 피부과 신발 바닥과 체취에 들러붙지 않던가? 그 갤러리에서 집어온 모든 사물이 향의 능력으로 새로운 공간에 재빠르게 깃발을 꽂지 않던가? 그뿐만 아니라 boma는 갤러리가 자신의 것인 양 벽에 못을 박고 장신구를 걸어두었다. 모 선생이 2010년대 초, 학생 boma의 작업에서 벽에 못을 박는 걸 보고 폭력적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이런 피드백이야말로 조금 한국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은 불효할 때마다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다는 표현을 쓴다고 들었다. 물론 못은 빼면 되니까 잘못을 한 후에 성숙해서 잘해드리고 사과하고 애를 썼지만, 그랬더니 그 못은 뺄 수 있었지만 못이 들어가 있던 구멍은 아물지 않더라… 아, 처음부터 잘할걸… 하고 후회한다는 레파토리… 많이들 못을 박는 일은 어떤 정서적인 타격과 연결이 되었다고 믿는 것 같다. 꽤 희안한 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럴싸하다. boma가 못을 박고 그것에 액세서리를 꽂아두는 것을 폭력적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름 passive-aggressive 대응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문제가 있다면 - 여기서는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는 미션이라든지 무언가가 없다는 자각이라든지 - 정공법을 마련함으로써 사태를 똑바로 confront 해야겠지만, 오히려 못을 박고 석고 거치대를 꽂아 마치 촉수가 벽에서 자라나듯 만들어놓고 액세서리를 거는 boma의 installation은 집을 빌려쓰는 주제에 자기 집처럼 사는 자의 공격에 가깝다. 이 벽 내 꺼, 나의 귀걸이를 이곳에 걸겠어.
그래, boma가 want한다면 get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boma의 way라면, 기왕이면 agressive 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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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won, you know how my blurry vision fails me. feel free to correct any description that seems odd to you. and if you happen to see boma, please ask her if i should pay for the pamphlet; a receptionist just gave one to me. thanks for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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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씨, 피오나 님 글은 대체로 직역했고요. 용어로 보이는 단어는 일단 영문으로 남겨두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 주셔요. 그리고 피오나가 전시 갔다가 팜플렛 그냥 받았다는데 값을 내야 하는지 물어보내요. 그러고 보니 저는 사실 실수로 하나 가져와 버렸는데 돌려놔야 할까요?
피오나 위언(Fiona Weern)
관습적인 인간 상호작용, 자본이 매개한 거래, 만들어진 욕망과 새로 부상한 신에 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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