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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by Hyosil Yang

Interviewer 양효실

Interviewee 박보마

chapter 1.

Y 보내주신 작업 관련 작가의 글/문장에 물질이란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잘 모르는 작가의 작업에 접근할 때 저는 작가의 입/몸 말 같은 것, 즉 아직 충분히 집단적인 용법으로 전유되지 않는 그/그녀의 독특한 어휘들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작업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요. 반복되는 단어에 묻은 작가의 욕망,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인 욕망을 찾는 방법이죠. ‘물질’이란 단어에 대한 박 작가의 강박이나 집착이 느껴졌고 아주 중요한 단어/전제/욕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질은 직접적이고 좀 더 원초적이고 전-언어적인 것이잖아요. 언어에 의해 재현된 이후에도 남는 잔여 같기도 하고.

B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물질과 애착이라고 할 때, 이게 갑자기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떠오르는 건, 십대 말에 한예종 입시를 하면서 제가 처음으로 했던 퍼포먼스가, 길에서 폐지를 줍거나, 판매하시는, 구걸을 하는 분들을 마주치면서 이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데에서 오는 감정을 어려워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던 중에 어떤 망상? 이 시작되었는데, 저에게 한 줌의 은빛가루가 있다고 상상하고 그런 순간들에 제가 그걸 뿌리고 다닌다는 상상을 했거든요. 이게 제 첫 번째 퍼포먼스 였던 것 같아요. (웃음)

Y 은빛 가루? 빛인데, 그러면서 물질이고? 은빛 가루와.... 보부상, 행상, .... 그러니까 가장 떠돌이 예술가들의 메타포metaphor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러면서, 비천한, 많은 경우 동일시하기 어려운데. 그거랑 은빛가루 사이에 박보마가 있는데, 왜 이 은유가 등장했을까? 은빛.. 금빛도 아니고.

B 아... 그러면 더 옛날로 가는데...

Y 그쵸. 있죠.

B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생 저학년 때... 놀이터에서 은색 페인트가 묻은 나뭇잎을 발견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은색 페인트가 묻은 나뭇잎인데, 저는 그걸 은 나뭇잎인양 되게 환상화시켰고, 어딘가에 묻고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찾아와서 다시 보고 그런 기억이 있어요. 그게 가장 기억이 나요.

Y 원초적 경험이네요? 참 특이하다. (웃음) 하필 눈에 띈 게. 나뭇잎에게는 학대인데? (웃음) 그러니까 은색페인트가 사실 '반사'는 아니잖아요. 기억은 오작동을 하니까. 그리고 그 기억 속의 그 이미지는 어떤 환상의 이미지잖아요. 리얼real인지 판타지phantasy인지, 망상인지 그 모든게 중첩되어 있잖아요. 저도 원초적인 이미지가 있고 그걸 따라가는 것 같아요. 즉물적으로는, 어쨌든 묘사하기에는 은색페인트가 묻은 나뭇잎. 그거 되게 그로테스크한 거고, ... 어린 아이한테는, 미술을 언제부터 하려고 했어요?

B 아, 저는 네 살 때부터 화가하겠다고 했어요. (웃음)

Y 오케이. 그럼 이미 거기 들어와 있던 거네요. 화가의 어떤 지각적 오작동일 수도 있고, 물론 중요하지 않고, ... 그리고 십대 후반에 자퇴를 했다. 부모님이 허락해주셨어요?

B 제가 원래는 패션 디자인을 하려고 유학을 생각하고 포트폴리오반에 갔어요. 그때 어머니가 그럼 한국에서 입시 하지 않으니까 다 걸어라. 하시고는 자퇴를 하라고 하셨어요.

Y 그렇구나. 그래요. 그럼 그 시기에 은빛 가루가 나왔고... 그 소녀의 감상성 안에서 그 사람들이 일단 불쌍해 보인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소녀라서 정당한데, 은빛 가루를 그 사람들에게 묻히겠다?

B 제가 그냥 공중에 (손으로 공중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렇게 은빛 가루를 만들어요.

(일동 웃음)

Y 그 만화 동화에 나오는?

B 네. 정말 그런 거였어요.

Y 그래서 그걸 뿌리면 이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거다?

B 네.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제스쳐를 한 몇 년 했어요.

Y 와... 사람들 없는데서?

B 네. (웃음)

chapter 2.

Y 빛을 잡는다. 라는 말은 뭔가요?

B 학교 다니면서는 계속 순간을 잡는 거라 던지, 시간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늘의 빛이 아름다운데 이걸 잡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계속 했어요. 그러다보니 그 빛은 무엇이고, 이걸 왜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며… 등등을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Y 잡는다. 라는 단어. 그럴 경우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장 궁여지책처럼 들어올 수도 있는데.

B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사실 저에게 중요했던 것은 견고한 형식을 지양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사진과 영상을 당시에 작업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했지만 도구로 사용을 한 것 같아요. 조금 내용이 있다고 해도, 거의 반사하는 대상, 순간을 찍었고, 서사가 있는 콘텐츠는 드로잉처럼 남은 것 같아요.

Y 그러나 사진으로 전향하진 않았고... 아마도 왜냐하면 이미 물감이 원초적 경험 속에 있으니까요. 더하여 순간을 찍는다, 잡는다, 포착한다, 쥔다, 잡는다, 줍는다... ? 손...? 이라는 메타포metaphor가 움직이는 것 같고. 그러면, '순간'을 잡는다, 라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매력적이고 비현실적인 망상이나 환각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20대 들어서 더 강화되는, 본색을 드러내게 되는... 그 계기라고 하는 건 어떻게 보아요?

B 글쎄요. 그 계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딱 떠오르진 않는데요, 당시에 저는 세상을 엄청 로맨틱하고 센티멘탈sentimental하게 느낀 것 같아요. 아마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화면이 가지고 있는 영원성에 관심이 많았어요. 해가 지는 시간에 보이고 느껴지는 빛이 변하는 그 모든 순간을 다 잡고 싶다는 욕망이 엄청 강했어요. 대기의 순간 순간을 모두 잡고 싶다. 아름다운 순간을 봉인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미술이라고 하는 영역을 만나면서 더욱 강화된 것 같아요.

Y 그럼 페인팅을 할 생각은 안 했어요?

B 음.. 학부 때 페인팅을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가 하면 뭔가 그 허상의 세계에 빠지는 게 재미가 없어서 붓을 들었다가 금새 놓았어요.

Y 아하. 허상의 반대말은 뭔가요? 박보마에게.

B 음.. 실체..?

Y 실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하지만 실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그게 실체인가요?' 가 아니라, 어쨌든 '나는 왜 이런가'에 대해서 질문을 여러 번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허상이라는 단어는 진짜, 리얼이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이 역설적으로 그 이분법을 더 집요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인 거고, 해체할 수도 있고.

B 페인팅을 하진 않았지만, 당시에 제가 제일 빠져서 한 작업이 하늘의 색을 기록하거나 대기의 빛-느낌을 기록하는 작업이었어요. 아주 인상주의적 욕망인데 어쩌면 그래서 페인팅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걸로 이제 안 될거라는 직감? 당연함? 이었던 것 같아요. 어느날 집에서 여느 때와 같이 그냥 노트북을 켜 놓고 작업을 하다가 방 안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그 시간을 느끼고 있었는데, 제 방 창문이 반투명한 유리라서 창문 밖 하늘이 그 반투명한 유리를 통해 블러blur처리 한 것처럼 하늘의 색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있었고 그 유리라는 미디움medium을 통해 본 하늘의 색이 제가 켜 놓은 노트북 속 포토샵 혹은 그림판의 스크린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꼈고 약 20분 푸른빛이 사그라들 때까지 실시간으로 하늘의 색을 관찰해 스크린 속에서 같은 색을 찍어서 디지털 이미지와 무빙 이미지로 만든 작업이 있어요. 저는 그때 제가 그 반투명한 유리를 통해 하늘을 본 순간 하늘을, 하늘의 색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과 가장 유사한 혹은 거의 원본 그대로의 하늘을 기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을 해서… 제가 계속 스크린 안에서 색을 찍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시간을 기록한다, 봉인한다, 라는 작업을 계속 했어요. 이 작업이 제가 운용해온 fldjf studio라는 또다른 정체성? 매개체를 통해 모종의 회사라는 이야기로 풀어지기도 하고, 좀 다른 맥락으로 다루기도 했고요… 그런데 당시에 저의 고민은 이 스크린 속에 있는 ‘빛 작업’들을 어떻게 (스크린) 밖으로 꺼내지? 였어요. 어떻게 이걸 이것 자체로 꺼내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종종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것 같아요. 좀 더 물질적인 상태로 보여졌을 때, 어떤 형식들을 통해 보여졌을 때 더 이상 그 느낌이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지금까지 탐구하고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웃음)

chapter 3.

B 그 당시에 제가 훔치는 걸 잘 했어요. 그리고 꼭 작업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훔치곤 했거든요. 그때 제가 자주가고 즐겨 갔던 곳이 문구점, 천원샵, 펜시점, 이런 곳이었어요. 아주 조야한 초를 훔치기도 하고 천원샵에 진열되어 있는 천사 조각 같은 거, 천원인데 그게 왜 천원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리고 천원을 내고 그걸 사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고작 천원이라는 거에 어떤 반항심? 치기어린 마음에 훔쳐서 작업으로 만들고 제가 만든 미니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고… 그런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대상들을 제가 기록하는 디지털 하늘의 빛과 같은 심상으로 대했고… 제게는 영원성을 은유하고 항상 향유하게 하는? 그런 대상이었어요. 가짜는 죽지 않기도 하고, 가짜에게 느끼는 어떤 혐오의 감정일 수도 있고, 어떤 가짜에게 애도의 감정과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순간의 영원성과 일시적이고 대체되는 것들의 영원성…

Y 죽음에 대한 공포일까 뭘까?

B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실제로 유년기 때 죽음을 인식한 어느 여름의 감정과 감정이 아주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가짜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영원성에 자주 감화가 돼요.

Y 그래요. 그 순간과 영원과 빛과… 사라지는 것과… 이런 그 밑바탕에 어쨌든… 저한테는 박보마 작가에게서 벌너러블vulnerable 이라는 단어가 딱 붙지는 않아요. 지금 이야기를 들어서는..? 죽는다, 부식된다, 사라진다… 물질로써의 그 어떤 , 물질도 개념에 가까우니까 사실. 어떤 즉물적인 리터럴이나 피지컬physical한 물질이 아닌 시각성에 가까운 물질이라면. 예쁜 것이 보여주는 사라짐, 한 때, 에피메랄ephemeral한 것이 보여주는 딱 그 순간으로 남는. 오히려 더 가장 표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 작업실 들어왔을 때 박보마에게서 뭔가를 찾고 싶은 건데. 내가 어쨌든 내 포지션에서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빛이 있을 거고, 이를테면, 장 주네가 이야기하는 노란 빛, 그것은 꽃이고, 서구의 종교적인 색이기도 하고 여러 문화적이잖아요. 스페인을 오가며 감상한 빛과… 박보마가 이야기하는 반사. 사실 익숙하지 않아요. 빛이 반사한다. …. 또는 물질을 물질로 만드는 건 그 어떤, 한 낱의 빛이다. 라고 배운 것도 있고. 구체적이고 체화되어 있고, 계속 역사를 가지고 이야기 되고 있고., 최초의 이미지에서 그것을 대체하는 것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어딘가로 가고 있고 그 가고 있는 것의 마지막은 모르겠고? 그걸 죽음으로 이야기하면 너무 시시하고 하나마나한 이야기인데, 거기까지 가기 위한 속임수? 장치? 은유 이런 게 결국 매혹시킬텐데. 박보마를 남기고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박보마의 시도. 어떤 메타포로 기억되고 싶은 것인지. 그래서 재미있는데요? 물질.. 그럼 정말 물질주의자라면 예를 들어 진흙으로도 간다던지. 그런데 진흙은 안 나오고 있고 지금…

B 아, 제가 요즘 점토 작업을 해왔고 요즘 흙 작업도 하고 있어요.

(일동 웃음)

Y 아..! 진짜 많이 헤맨다! (웃음) 좋다! 저 갈게요. (웃음)

B 흙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그 전에는 물질에 회의가 많았어요. 물질을 다룬다는 것에. 얘는 어차피 사라질 거니까 라는. 그래서 계속 디지털 쪽으로 빠진 면도 있는데, 이 갈증이 아마도 해소가 안 되어온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날 오랜만에 점토를 다뤘는데 만지는 그 느낌 자체가 너무나 평안하고 좋았어요. 그리고 페인팅도 해봤는데 너무 좋고…

Y 다시 해보니까?

B 네.

Y 와우. 아, 그냥 내가 찾아서 하는 거네요.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B 흙이, 저항감이 없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Y 어떻게 하다가 흙까지 갔어요? 디지털로 그렇게 가야 동시대적이고 또 지금 나이를 생각하면 그런데 흙을 만났다. 흙은 도시적이지 않고, 되게 생태적이고 또 오리엔탈… 그리고 뭐까지 갈까.

B 신비주의.

Y 예. … 유아적이고 관능적이기도 하고.

B 네 맞아요. 흙은, 오랜만에 지점토로…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냥 손으로 주물주물 다듬으면서, 그런데 그 모양이나 느낌이 제 뜻대로 나오는 것이 좋았어요. 큰 작업이 아니니까. 그냥 제 손 안에서… 저는 사실 디지털과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하다가 개인전을 마친 어느 시점부터 작업에 물질적이고 텐저블tangible 한 것들이 등장하는데 그때부터 뭔가 제가 그들을 다루는 게 버겁다고 재미가 없었고… 회의가 많았어요. 어차피 안 될 거 그런 마음이 너무 강했고. 그런데 조금씩 점토를 만지다보니까 뭔가 그냥 내 뜻대로 조그맣게 뭔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생동감을 느꼈어요.

Y 그래요... 지금 내 뜻대로 된다는 표현을 썼는데. 내 뜻대로 되는 게 있을 리가 만무한데. 진흙을 내 뜻대로 된다고… 오히려 뭐라고 해야 하죠? 학대당하는 진흙 같은 느낌도 약간 있고. 되게 수용적이니까. 진흙은. 매체보다는 매질이라고 했을 때 그런 면에서는 그 요즘 드라마 보건 교사 정은영에게는 젤리고, 누군가에게는 정액같은 액체일 수도 있는데. 님은 지금 진흙이고, 진흙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젤리, 거품 다른 걸로 가능한 이야기가 진흙으로 전이되어 등장하고 있고 진흙은 관능적이면서 …. 그 지점에서 그게 뭘까. 사랑과 폭력은 사실 분리 안 되고. 나르시시즘과 사디즘은 굉장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고. 빛이나 물질에서 점토, 흙으로 가는 것도 되게 특이하고 그러면서 뭔가를 찾아내고 있고…

B 네. 그리고.. 흙도 그렇고 페인팅도 그 단순한 붓질에서 느끼는 느낌도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chapter 4.

B 제가 요즘 하는 프로젝트는 제가 지금까지 스튜디오 작업에서 암시해온 어떤 가상의 회사를 물질로 구현하는 작업이고,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시작한 회사의 이름이 ‘소피 에튤립스 실랑 ‘Sophie Etulips Xylang’ 이에요. 그런데 그 몸체를 만들려면 실제 물질이 등장해야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빌어서 좀 더 가상적인 디지털 작업으로 접근했다면… 일련의 점토 작업 이후에 시작할 수 있었어요.

Y 그럼 회사건 자본주의건 심지어 국립현대이든 개념을 실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as if로서의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인데. 지난번에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 하는가’ 라는 포럼에서 국현 소속의 장혁이라는 분의 프레젠테이션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국현은 텅 비었다. 국현의 정체성은 정체성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였어요. 물론 정체성은 이데올로기이다, 라는 게 정체성을 해체하는 동시대 담론이죠. 기관, 회사의 ‘내부자’가 그렇게 말하는 게 흥미로웠죠. 공공의 문화 기관과 이윤창출이 목적인 회사가 겹치고 작가와 사업가가 겹치고. 그걸 가감없이 드러내는/말하는 지금 시대의 비관이나 우울이나 냉소나 유머…

B 음.. 요즘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말씀을 드리면, 저는 표면적인 것, 가짜라고 불리는 것, 그런 자격으로 불리는 물질들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그런 물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고요. 그리고… 그 외의 성격을 띄는 현상이나 물질을 남성성으로 느끼고 곱씹는 것 같아요.

Y 표면적이고 가짜라고 불리는 … 그런 자격의 물질에 쥬얼리도 들어가는 거예요?

B 네. 장식적인 맥락의… 주변적이고.

Y 속이는 거니까 장식이라는 거는. 수단이고.. 이런?

B 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이를테면 백화점의 쇼윈도에 디스플레이라 던지, 판매하는 물건의 샘플처럼 앞에 나와있는 물질들, 마치 그 전쟁터의 총알받이… 처럼 느끼고. 얘네는 다 어디로 가지? 얘네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큰 맥락에서 보면 저는 그런 존재들을 위한, 혹은 그런 존재들을 반영하는 전시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뒤집힌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건 두고 보고 싶어요.

Y 속이는 미끼로 존재하는 것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다? 물질이란 단어/개념으로 엄청 다양한 이야기를 압축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군요. 가장 즉물적인 것까지 가기도하고. 빛에서 아주 즉물적인 물질을 연결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B 네. 그래서 물질에 대한 관심과 먼저 이야기하던 회사를 이어서 이야기하면, 제가 회사라는 대상 혹은 회사로 상징되는 고층 빌딩에서 가장 관심가지는 곳이 로비 공간이거든요. 시간도 불분명하고 누구라도 들락날락 할 수 있고, 그곳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실제로 제가 퍼포먼스를 하면서 부딪히고 충돌하거나 이해받는 사람들은 청소부나 경비원 분들이고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제가 점토를 다룬다거나 할 때부터 물질과 좀 더 친해져야겠다. 즉물적인 지점에서 그냥 더 만지고 싶었고 그게 자연스러웠어요. 저는 모조적인 것 가짜라고 불리는 것의 물질성에 아마도 스스로를 동일시했는데, 그 동일시는 사물뿐만이 아니라 제가 로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맥락을 같이해요. 세상에는 진짜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 거죠. 다이아몬드, 시트지가 아닌 엄청 무겁고 많은 인력이 들어서 설치한 대리석이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 것들을 보면 저는 항상 거리가 있는 거죠. 그래서 물질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매체적으로도 그렇고…. 그 대상을 가지기 위해 혹은 잠깐 기생적인 행위로서의 제스쳐 퍼포먼스와 설치를 했다면 … 지금은 아예 내가 만든 그 모든 가짜들을 가지고 그곳을 덮고 싶은 거예요.

Y 내가 만든 가짜라는 말도 또 특이하네요. 내가 만든… 작품은 대체로 진짜인데, 왜 내가 만든 가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 (웃음) 그러면 시뮬라크르Simulacre에 시뮬라크르로 대적하는 건가? 로비야말로 정말 키치고, 판타즈마고 그런 거잖아요. 되게 모호한 공간이지만 가장 일루젼이 작동하는 공간, 회사인 것처럼 보이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누구나 들어올 수 없고. 그리고 그런 공간을 좋아하는데, 그런 공간을 문방구나 다이소나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로 덮어 버리는 환상. 되게 벌너러블vulnerable한, 미인, 꽃, 사라짐, 비극적인 비관적인 어떤 것들이 작가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 떠오르거든요. 박보마 작가를 보면, 꽃이 완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죽음이라는 은유와도 연결되어있고 그것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느낄 수도 있겠다. 이건 내가 무작정 투사한 것이라 틀릴 수도 있어요. (웃음) 또는 그런 이야기들과 가까이 있게 되는… 꽃에서 죽음 부패 악취를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로비, 또 그 로비에 들어가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은 그 주변부적인marginal 사람들, 그리고 로비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의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주 자본주의적인 욕망? 에 아주 잘 맞는 스테레오 타입인데, 그걸 비판하는 방식이 아주 장인적이거나 지루한 그런 작업도 아닌 거고 지금. 되게 모순적이면서 저항적이면서 역동적이면서도… 언아이덴티파이드unidentified인데… 회사의 몸체, 바디라는 말이 나왔단 말이에요. 회사라는 건 텅 비어있는 거고 건물이라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안에서 보면 그것도 텅 비어있는 것인데, 왜 몸체라는 말을 쓰는 걸까요?

B 몸체라는 단어는 제 작업을 자주 봐온 큐레이터 유지원씨가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회사를 물질로 구현하는 작업이라는 말을 보고 회사의 몸체라는 단어를 만들어줬고,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하여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사용을 했어요.

Y 그러니까 물질로 구현한다는 말이 임바디embody니까, 텅 비어있는 가장 자본주의의 총아인… 그것을 물질로 만들고 싶다. 왤까? 그걸 되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고…. 박보마의 로비는 뭘까? 결국 작품도 물질이잖아요. 개념이 갖는 표상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물질, 물질성의 탈출을 보여주거나 그 물질에 대한 집착도 버리려 한다. 이렇게 되는 건데, 임바디라는 단어는… .그러니까 회사의 몸체는 이상하지만 회사를 임바디한다. 라는 말은 되게 구체적이란 말이에요. 되게 역사적인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많은 텅 비어있는 것들과 너무나 많은 매력적인 것들 사이에서, 자기력을 가지고 왜 하필 그렇게 됐을까?

B 아마 도시에서 여성으로서 가지게 되는 혹은 제가 매혹되고 또 저항하기도 하는 자본주의적인 욕망이나 허상, 허영심이 거기에 들어있고, 거기에서 시작하면서 저는 모조적인 것이 만드는 시간을 확장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그 두 개의 감정 혹은 그 사이에 있는 저로서… 단순하게는 박보마가 뭘 했는데 저라는 미디움을 통해서 소위 가짜라고 불리는 것들의 권위가 높아졌으면 좋겠어요.

(일동 웃음)

B 그리고 그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곳을 청소하는 사람들과의 충돌도 필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마음은 그곳을 지은 사람들, 이 건물을 직접 만지는 사람들이 이 건물의 주인이다. 라는 혼자만의 논리가 있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 시간성은 다 잊혀지잖아요. 지은 시간도 숨겨지고, 청소하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시간도 실제로는 그 건물이나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시간이 아니니까요.

Y 그러면 예를 들어서, 그 미술관에서 청소한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 작업 중에 미술관이 들어가 있는 뉴욕에 굉장히 큰 몇 층짜리 건물에서 교대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계속 폴라로이드로 찍고, ‘당신은 예술가입니까, 노동자입니까.’ 라는 질문에 그곳에서 만나는 수 백 명의 사람들에게 표시하라고 하면서… 전시 내내 그 폴라로이드 사진이 설치되는 작업... 어떻게 보면 예술가와 그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충돌하면서도 연대하는, 콜라보가 되는, 그들을 가시화하는… 작업. 그래서 되게 여성적인 작업이라고 이야기 되는데, 이를테면 지금 보마씨가 이야기하는 그 공간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찍고 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라고 할 때, 그 사람들이 계속 보마씨 작업의 바운더리 안에 있잖아요. 그런데 잘 안 보인단 말이에요. 아까 이야기하는 문방구, 천원짜리 물건들도… 그들에게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엄청 도덕적인 감정을 가지기보단 되게 ‘유아적인’ 태도잖아요. 지금. ‘빛이 있으라…’ 이렇게 하는 지금… (웃음)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관심에서도 떨어진 상태에서… 뭔가 아무튼 주변부적인 것들을 보려고 하는 사람. 또는 그걸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 또는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이 왜 불쌍하냐, 네가 잘못 본 거지. 뭐 이렇게까지도 말하는 쿨함이라던지… 그리고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당신의 작업은 너무나 밋밋하고… 그런데 이야기는 다소 관계에 대한 이야기. 또는 뭔가 자기식의 정의 개념도 있는 거잖아요. ‘모조’라고 하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 또는 권리 없는 것들.. 가짜.. 싸구려.. 또는 유아적임 이런 것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 이런 식의 이야기. 그런데 그 이야기 방식에서 빛과 물질이라는 것들이 작동하고 역설적으로 로비라고 하는 공간이 들어오고.. 그러니까 음… 만약에 제가 좀 엄격한 자본주의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넌 지금 아무거나 섞어서 (웃음) 되게 무책임하고 자본친화적인 인간이 뭔가 배우기는 배웠고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너는… 가장 재수 없는 인간 유형이구나 하는 비난이 올 수도 있잖아요? 가난한 자가 해야 할 이야기를 네가 다 독차지하는 거냐? 이런 비판들… 들어봤어요?

B 아니요.

(일동 웃음)

Y 자기의식. 나는 이런 사람이라 이렇게 해. 이게 옳은 일이라서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그럴 정도가 되어야지만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깨달은’ 분이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일반적인 기계적인 이해 방식들 사이에서, 여성들의 작업이라고 했을 때, 또 남성 비평가나 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어떤 사람들의 되게 상투적인 카테고라이징categorizing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 사이에서 박보마가 감당해야할 게 좀 많기도 하지 않을까? 유리하다가보다는, 스스로 덫을 놓는 건 아닐까? 본인이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덫을 발견하는? 자기모순을 발견하는 허점이 되게 많은 작업인데, 거기에 대해 지적 질하는 사람들에게 발끈할 것인지 웃을 것인지.. 이런 생각도 들고. 처음에 젊은 작가인 박보마가 왜 나를 부르지? 하는 생각을 했고. 제가 젊은 작가들 작업을 해석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런데 일단 님이 나를 부를 때 내 쪽으로 뭔가 문을 기꺼이 열어준 것이니까, 저는 좀 편한 마음이었기도 해요. 저 같은 사람은. 아무거나 다 건드리면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붙잡고 그걸 구실로 작가를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사람이잖아요. 빛을 잡는다. 물질화 시키려고 한다. 그 물질화가 존재론적인 방식이 아니라 모조와 연결 된다…. 그러다가 흙 작업을 한다…

Chapter 5.

Y 여전히 납득이 안 돼요. 왜 모조라는 단어가 키워드 중에 하나잖아요. 물질, 임바디, 빛, 모조, 가 공존하잖아요. 그게 당신인 거고.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강하게 들어가 있는 거예요?

B 강하게는 아닌 것 같고요. 그런 주제로 작업하는 건 전혀 아니고…센슈얼sensual한 지점에서 그 맥락이 어떤 성정체성을, 이를테면 제가 놓은 덫과 같은 페미닌feminine한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아요. 또 제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어떤 요소나 사회 정치적 맥락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렇고요. 회사라고 했을 때, 그 공간에 양복을 입고 들어가는 남자들, 멀리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고요. 선망과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딜deal하려고 하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교육받아온 남성에 대한 이미지와 세계 속에서 겪고 마주하게 되는 남성성이 충돌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Y 페미니스트적인 의식과 나란히 페미닌feminine한 작업이 진행 중인 듯싶네요. 그 부분에서 모조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모조는 되게 화려하고 예쁘고…

B 모조는 그것의 화려함이나 둥둥 뜨는 예쁨이라는 목적보다는 제게 좀비라는 맥락으로 다가와요. 죽지 않는다는 지점이요.

Y 관객들은 와서 자기가 아는 것, 보고 싶은 것을 투사하고 그렇게 읽고 이해하고 찍고 가잖아요. 결국 내 작업을 내가 원하는 식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에 대한 작가들의 갈구, 허기는 계속 남아 있게 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이나 읽어줄 툴/어휘가 이미 있거나 편견 없이 즐기는 이가 소수의 작가가 욕망하는 관객일 것 같기도 한데요. 이미 해온 거를 바라보는 냉담한 비평가들, 또는 전시장 오타쿠들 사이에서 내 작업을 알아보는 사람들 나와 접속할 사람들… 거기에서 좀비, 모조, 계속 이렇게 일종의 기존의 어휘를 장악하는 건데. 좀비와 모조도 새롭단 말이죠.

B 네… 그러니까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진 않는 게 가짜같거든요.

Y 그렇지. 또는 진짜의 세계를 진짜로 만드는 게 가짜이기도하고. 이 사람이 되게 지적이어서 결국에 미술도 회사로 합병된 거 아니야? 그래서 미술이라는 제도를 회사로 디스플레이스display해서 공략하려고 하는 거야. 라고 듣고 싶은 욕망이 또 제게는 있는 거고.

B 분명히 그런 부분도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더 크게는 회사나 제도로 상징되는 남성성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요.

Y 오늘 되게 재미있는 게 그러니까, 있어요. 약간 왜 이런 작업을 해요. 라고 말하고는 꾀어 맞추고 있는 느낌이. 그런 상태인데. (웃음) ... 지금 현재 2-30대 여성, 사회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되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거고. 미술이라고 했을 때 회사나 디자인의 영역도 이제 들어와 있는 거고, 그들과 같이 접속해야하고. 왜 리얼 스튜디오가 회사가 되었는지. 작가의 작업실일 수도 있고 다지인일 수도 있는데, 왜 대량생산된 싸구려 모조라고 하는 걸 가지고 그런 어떤 외형적으로 남성성의 상징인 그런 것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가는구나. 동시에 회사를 물질화 한다? 임바디 한다? 그러니까 비물질적인… 비본질적인 작업이라고 한다 던지.. 이와 연결된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면서 가장 허상-시뮬라크르 라고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적인 형식들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회사라나는 단어를 썼구나. 먼저 썼고 뒤늦게 정당화하는… 회사라는 걸 임바디한다고 했을 때 그 말도 이상하단 말이에요. 비로소 박보마를 통해서 이 불쌍한 남성들이 구원받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나 역시도 마초… 이미지로서의 시뮬라크르서의 남성성이 남성을 굉장히 괴롭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복을 입은 남성이 되게 섹시하다고 느끼는 부분과 양복을 입은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되게 불쌍하다고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과 비슷한.. 그러면서 로비는 나도 가면 매혹당한단 말이에요. 속임수라고 알면서도 들어가면… 음.. 느끼는 것들이 있단 말이에요. 가장 우리의 욕망을 조작해놓은 공간에 들어가서 비판하면서도 매혹당하는 나 자신이라는 그런 역설들… 보마씨는 그곳에 들어가서 퍼포먼스도 했고. 그 퍼포먼스가 공모이면서 전복이고.

팝 이후로 이제는 자본주의의 대한 비판의 작업이 가장 자본화되는 거라는 그 실패를 계속 보고 있잖아요. 결론은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 어떻게 먹히고 있는가.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런 것이 되게 해체적인 작업이라고 한다면 내가 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보마씨가 보내준 글이 좋았어요. 많은 경우 스테이트먼트를 읽으면서는 이사람이 이렇게 글 못 쓰는 구나. 어떤 참조점이겠구나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보마씨 글에서 읽어보면 망상, 집착, 화두 이런 것들이 물질이어서.. 어마무시하게 집중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작업을 가지고 하나의 공간의 이야기? 공간의 이야기는 누가 사느냐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런 어떤 흔적도 아닌 어떤 비물질성을 향하면서. 향수.. 하고 또 뭐였지?

B 소리..

Y 네. 그러나 분명히 화려한. 누추하거나 멜랑콜리한 느낌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자기가 하는 작업에서 그런데 그거는 남아요. 그러니까 자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는 작업들을 보면서 그래 알겠다와 예술을 통해서 날 좀 위로해줘. 라는 욕망. 그리고 그 예술을 통해서 위로받았다는 그 느낌이 너무 자본화되어 있어서 기분이 나쁜 부분과 그 사이에서 되게 아슬아슬하게 위험해 보이는 느낌이 있단 말이에요.

B 저는 계속 그 아슬아슬한 걸 맥락화하고 싶어요. (웃음)

Y 저건 언제한 거예요?

B 저건 올해 한 페인팅인데요, 뭉개진 꽃을 그렸어요. 수술과 암술이 없이 그냥 이미지로 뭉개진.. 이 작업은 수 년 전에 길에 밟혀있던 조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되게 감정적으로, 이미지로 제게 박혀있거든요. 연민이라는 감정도 있었지만 ‘질기다’ 라는 이미지도 되게 강했어요.

Y 아하….

B 그 잔상으로 하는 페인팅이에요.

Y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 조화를 보고 그렸다. 조화를 보고 짓밟힌 조화를 보고 질기다. 라고 하는게 미친 접합이잖아요. 저건 드로잉이고 연필, 유화…. 저걸 그려서 전시장을 꽉 채워놓으면 엄청 이모셔널emotional하잖아요.

B 네.

Y 그런게 또 우리를 현혹시키고 또 망상하게 하는 희망으로 느낄 수도 있고. 글은 되게 직접적이라서 정서적인건데. 이미지는 딱 보고 좋다. 그런데 왜 좋은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야기가 있고. 가장 사이버적인 것이 가장 이모셔널하다라는 포스트 휴머니즘 적인 면에서 그러니까 박보마는 21세기에 모조, 조화, 죽을 수 없는 거, 가짜 안에서 인간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느낀단 말이에요 저는. 결국 인간이잖아. 인간. 지금 이야기하면서 내 마음이 촉촉해지고. (웃음)

B. 맞아요. 그런데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그걸 그냥 보여줬을 때가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그걸 믿지 않기도 하고요. 또는 작업으로 그 감정을 단순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그걸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Y 응. 나 같은 경우도 그냥 보면 어우 쎄. 너무 까칠하지 않아?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천상 여자야. 이렇게 되는… 그말을 들을 때 스스로 안도가 되기도 하고 그럼 난 왜 길에서 만나는 진부한 천상 여자랑 다른 척하면서 결국 천상 여자야? 까칠한 것도 나고, 천상 여자도 나고. 그게 되게 모순되어 있는 사람이겠지? 내가 나이려고 하는 방식. 밑바닥은 결국 굉장히 이모셔널하다고 할 때, 작가들은 뭘 두려워 하는 거지? 너무 신파라서..? 물론 이건 내 욕망이고… 스펙터클spectacle에서 오그라든다는 거는…






이 인터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창작 레지던시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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