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MA 인터뷰(를 가장한 글쓰기)




조이솝



나는 박보마의 작업을 그리 멀지 않은 학부생 시절처음 보았다. 2016 년, 날이 조금씩 더워지던 무렵 그가 참여했던 <SILKY NAVY SKIN>은 내게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당시의 회상을 몇 문장으로 떼었다 접자면, 이미 영업이 종료되었지만 컨셉츄얼한 테마파크에서 그럴듯한 부품들을 가공해놓은 이미지? 그것들이 들어선 뚜렷한 전시 공간. 어설픈 마감에 이토록 꼼꼼하게 공을 쏟은 배열과 허술함, 그러나 되려 물질간의 텐션이 탱탱해지는? 어떤 캡션이 달린 작업이라도 마침표나 쉼표가 아닌 물음표와 도돌이표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부호들?


내가 재학 중이던 조소과 시스템의 근대적 재료 기술을 익히는 수업과는 꽤 거리감을 둔 그의 작업들은, 되려 얇고 허약한 사물로의 물성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흐름을 파악하고 인물의 외양까지 연상해가며 읽어내는 소설과는 다르게, 비문 투성이에 해석도 잘 안 되는 한문을 끼워 넣은 하나의 시처럼, 한 글자 한 단어를 보다 찬찬히 느껴가게 만들고, 돌아서면 더 연해진 잔상이 흘러가는 듯. 하나의 가구를 완전하게 계획하여 한 치의 오차 없이 짜들어가는 접근과는 달리, 스튜디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오브제들을 위태롭게 쌓아 올려 가끔 테이블처럼 사용하는 듯. 도저히 잡히지가 않아서, 손끝으로 만들고 해체하며 생각의 샘에 잠들어있는 움직임을 건져 올리려는 듯.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나는 작가의 이름을 당장 페북에서 검색하고 친구를 걸었다. 그때부터 그와 나 사이 묘한 게임이 이뤄졌는데, 서로가 공유하는 영상이나 이미지 혹은 각자가 작성한 글에 (거의)무제한 ‘라이크’를 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취향의 겹침이라기보다는 사람이 좀 겹치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고, 어쩌다보니 만남을 가졌고, 또 어쩌다 친구가 되었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당연하게, 작가로서의 나는 작가로서의 그의 태도, 작품에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의연하게 울먹이는 감정, 생에 연이어온 체념들을 반짝이게 장식하고 잔잔하게 반사시키는, 그러나 물결 없이 진동하는 마음이 해체되어 공간에 잔류하는 그의 작업들은, 어떤 여성들을, 어떤 퀴어들을, 어떤 부정된 존재들을,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염원과 이미 막을 내린 영원의 모순을 작가로 살아가고 작업으로 수행하며 작품으로 옮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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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마에게는 인스타그램 상에 세 개의 계정이 있다. 하나는 Nature & Me 라고 소개해놓은 일상계(현 bmq_._._._), 그리고 How to deal with the reflections from the companies (c)2014- fldjf 라고 소개해놓은 작업 계 1, 나머지 하나는 WHITE MEN DECORATION & boma – The pseudo matters / handcrafted poetic │ Jewerly, Ornament, Object, Display.. | 라고 소개해놓은 작업 계 2. 그는 어떤 이미지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바라본 그대로 프레임에 담아내기도 하고(가령 너무도 일상적인 상황에서 포착한 인물이나 건물), 석고와 같은 전통적 재료로 조각을 만들기도, 그 위에 도장을 찍거나 드로잉을 하기도, 점토로 곧 부서질 물건과 자연물을 소조하기도, 완성으로 귀결되지 못 한 작품의 재료들만을 업로드하기도, 무용하게 예쁘기만 한 혹은 쓸모 있음으로 방향을 돌린 장신구들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종종 그의 얼굴, 손, 목, 다리; 몸이 등장한다. 작가이자 모델인, 혹은 거치대이자 오브제인 작업 일부로서 그는 이미지에 박혀있다. 나는 그런 그를 볼 때면 자신으로부터 아웃사이더이길 자처한 사람이 보인다. 자신의 작업 이미지에 너무도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외려 작가로서의 존재이기를 부정한 과정. 그리고 반대편에는, 그 모습을 거부하지 않는 ‘일단 손에 쥔 것은 놓아주지 않으려는 에고이스트’1 가 서 있다. ( 1 이화경,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 행성 B 잎새, 2017, p.106.)

이건 작가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도출된 나름의 사견이기도 한데, 그는 마음으로 애쓰기 보다는 때때로 타인으로부터의 정열적인 사랑과 헌신을 갈구하기도 하며, 오랜 일기장을 모조리 뜯어놓고는 이를 버리지 못해 다시 정돈하여 꼭 맞는 함을 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내 생각). 그리고 그 중 열에 한 장은 빼곡하게 슬픔으로 도배해 놓은 노트가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절대 입 밖으로 ‘너무 아프다’거나 ‘끔찍해’라고 소리치지도 않을 것이다(역시, 내 생각). 대신 그는 다만, 불현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고 없이 상실감을 놓아주고(아니면 억누르고서) 그나마 몸에 남은 온기로 세상을 다시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눈빛에 반사된 검열한 사실들이 그가 발현한 물질과 텍스트로 어딘가에 남아 있고, 남았고, 남을 것이다. 마치 세 개의 계정이 모호하게 교차되어 본계 없는 세 부계로 부유하는 제스처처럼.




Interview by Cho Leesop



Interviewer 조이솝

Interviewee 박보마


chapter 1.

C 작업을 할 때와 작업을 한 이후의 전시 그리고 전시가 막을 내렸을 때 중 가장 지칠 때가 언제예요?

B 저는 전시 여는 순간 허무함이 되게 컸는데 요즘에는 그닥 안 지치더라구요. 예전에는 전시 올리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허탈함이 컸는데 허무하고. 도움이 안 돼서. 내가 뭐 했지? 그런 어떤 질문을 하게 하는.

C 돈이 안 되어서 인가?

B 근데 그것도 그건데, 돈이 더 많이 됐으면 뭔가 더 내 느낌이 윤택했겠지. 그런데 그랬어도, 그 허무함은 나의 뭔가를 다 바쳤는데 그게 허구의 세계인. 그런 단순한 문제인 듯.

C 작가의 존재가 어쨌든 허구를 끌어와 현실 세계에 안착시키는 건데, 그 과정에서 현실에 발을 딛고 허구를 조망하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신과 정신이 들어가 있으니까. 전시라는 조건에서 시작과 끝이라는 형식을 알아차렸을 때, 그게 허무하다는 것인가?

B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은 안착하지 않았다는 어떤. 아, 꿈이었구나 하고 꿈에서 깨어나서 현실을 보게 되는... 더 몇 년 전에는 이게 있다는 것도 모르고(현실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 그냥 달리는 것처럼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현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작업하니까 덜 허무한 것 같아요. 단순하게 말하면 어떤 면에서 ‘이건 일이야.’ 라고 인식하는 것? 그 전에는 그 세계밖에 없고, 현실이 없었지.

C 그 전에는 정말 아예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B 그치. 그 전에는 현실이 아예 없었어. 첫 아카이브 봄 개인전까지만 해도. ‘실키 네이비 스킨’ 할 때도 없었고. 실제로 제가 개인전 끝나고 전시나 작업을 한 1년 정도 안 했어요. 그랬는데, 그 시기를 지나면서 그러니까 그 허무함을 보니까. 할 수가 없었어. 작업을 못하겠다 싶어서 그래서 안 했어. 그러다가 지점토 만지고 반지 만들고 하면서 다시 살아났어. (웃음)

C 그러면 뭔가, 저도 어떤 식이냐면. 저는 조소과 출신이라서 조각가라는 인식이 무의식 중에 강하게 있는데, 물질을 제작하는 과정이 그 생산성이라는 게 사람한테 자극을 주고 의욕을 주잖아요. 그런 동력이랄까. 그런 거. 그런 게 참 중요한 건데 그게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결과가 없는 건 아니야. 근데 뭐랄까. 그런 괴리에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정통의 형식 작업이 가장 안전하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살아나기도 하고… 그래서 보마가 손으로 직접 만지고 감각해서 뭔가 다시 살아났다는 게 뭔지 알 것도 같아요. 그러면서 작업이 커지고, 핸들링 범위를 조금씩 벗어나는 재료 구성도 생겨나는 것 같고…

B 작업이 단계를 거쳐나가는 과정이 있을 텐데 어떤 사람은 되게 개념적인 과정을 발전시키는 사람도 있을 테고, 물질적인 과정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테고… 나는 비물질적인 작업을 하다가… 제 작업에서 비물질적인 작업은 비물질적인 작업이라고 해도, 그 작업이 표방하는 것은 어떤 물질의 표면이었기 때문에 혹은 어떤 심상이라 던지 느낌이라 던지 분위기라 던지 그런 것을 따온… 그런 작업이었기 때문에 물질을 욕망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건데 거기서 어떤 한계를 느껴서 현실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

C 그럼 이 맥락으로 이은 한 갈무리를 하면, 보마 작업을 거쳐나가는 과정에 비물질에서 물질로 옮겨오는 영역이 현실에 대한 자각과 그리고 그것이 실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을 언급했는데, 궁금한 것이 심상과 느낌, 분위기를 물질로 표방해서 비물질의 세계를 표현하는 작업을 이전에 해왔다고 했잖아. 나는 과연 보마의 작업이 비물질인가 자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보마가 사용하는 키워드, 말에는 항상 허구 가짜 빛 비물질…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노력이 보이는데 정작 작업을 보면 엄청 물질적이거든요. 물질들로 그걸 이야기하니까. 심지어 그 물질들을 봤을 때 보마가 말하는 뉘앙스가 다 전해지지 않더라도. 어떤 작업은 그 뉘앙스를 전달하려고 해도 그에 못 도달해 ‘뭘까?’ 싶은데 보마 작업은 그냥 그걸 무심하게 던져놓고 알아서 (그 느낌을)가져가라 하는 느낌을 받아요. 작업에 등장하는 텍스트도 항상 모호하고, 내가 이런 걸 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은 하는데 그게 모호하게 다가와요. 비물질 작업이래. 근데 물질이야. 그런 모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게 보마의 작업에서, 관람자와 작가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접점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보마가 이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과정 아닌 결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작업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을까요? 개념이든 물질 단계든 그런 이야기를 했듯이… 보마 작가에게 애매하고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질문일 수 있지만 어떤 워드든 문장이든 정리가 될 수 있을까? 작품이라고 했을 때. 그럼 더 결과적으로 다가오니까.

B 작품의 키워드…

C 그러니까 ‘작품’이라는 결론으로 봤을 때, 자신의 작품을 말할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뭘까요? 궁금하다.

B 음… 어려운데? 작품이라고 했을 때... 나한테 동의어는 잔해물? 부스러기. 그때의 맥락이랑 다르진 않거든요. 요즘 좀 더 물질로 공간 안에 구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내가 만드는 작품을 잔해, 껍데기, 안이 비어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

C 음... 저는 그 말을 들으니까 제가 제 작품을 볼 때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건가. 쓰레기라는 말은 무의미라는 단어와 같이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안이 비었다고 했으니까. 껍질들. 허무를 만들어 내는. 허물? 그렇다면 그것들이 ‘쓰레기’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고…

B 쓰레기와 허무는 많이 다르지 않나요? 쓰레기는 이미 의미가 너무 많았던 거 아닐까? 나한테 껍데기는… 정말 그 찰나의 빛이 어디에 비춰서 물질성이거든요. 이미지를 위한 아주 잠깐 노출이 된 어떤 시간과 연관이 강한 물질인데요. 이를테면 내가 계속 관심을 가져온 물성은 어느 새로운 카페의 팝업 스토어의 시트나 인테리어 내장재, 어떤 서구의 어떤 오브제를 비슷하게 베낀 이런 스탠드라던지, 화병이라던지… 그런 걸 베낄 때 상이 있을 거고, 대리석을 흉내 낸, 스틸을 흉내 낸 시트도 다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거잖아요. 그걸 봤을 때 나는 거기에 빛이 비췄다고 보거든요. 사진의 원리처럼. 무언가가 복제되어 있으면 그게 가짜라고 무시하거나 폄하하잖아. 그런데 나는 그 가짜에도 시간이 있다고 보는 거지.

C 짝퉁에도?(웃음)

B 응. 짝퉁에도(웃음). 난 짝퉁에 연민을 느끼고 있어. 어떤 연민과 애증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 그래서 그런 대상들을 봤을 때 어떤 연민, 혐오, 애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매혹도 돼. 그래서 껍데기는 나에게 빛이 잠시 비춘 어떤 표면으로서의 물질성이에요.

C 내 입장에서 정리를 좀 해볼게요.(웃음) 그럼 쓰레기와 껍질이 다른 거. 쓰레기는 이미 의미가 많다고 했고, 그랬었기 때문에 그게 버려졌을 때 오히려 물질로 남고 아무것도 아닌. 그걸 덜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쓰레기라면 보마는 사실 상상이잖아. 감각될 수도 없고 가시화되지도 않는 무엇에서 포착하려는. 인간의 입장에서 의미화 할 수 있는 것이 있잖아요. 무슨 이데아 생각난다.

B 나 그 생각많이해. 플라톤. 동굴이야기.

(일동 웃음)

C 그러면 보마가 작업하는 방식은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즉흥과 충동, 도발, 유도하는 방식이지만 강압적이지 않게 플러스 시키는 건가? 쓰레기는 마이너스를 향한다면 허물은 없는 것에서 출발하는 플러스의 작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짝퉁에 대한 연민이 있다는 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짝퉁도 우리의 입장에서 진짜라는 가치-허구, 인간이 놓을 수 없는 가치에 빗대어서 짝퉁이라는 것을 폄하하고 깎아 내린다고 생각하는데, 보마 말대로 그 자체는 그 자체잖아요. 보마는 정말 어떤 ‘원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나?’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특히 나는 지금 대화에서도 그렇고 보마가 글과 말에서 항상 말한 ‘빛’이. ‘빛을 가지는 일이 쉽게 실패하고’ 이게 그 스튜디오 소개글에 나와있어요. 여기에 내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뭐라고 적었냐면, ‘왜 하필 ‘빛’일까. 빛을 통해 사물을 식별하고 무언가를 볼 수 있어서? 시각 인지의 첫 단계가 빛이기 때문일까? 단계라기보다는 조건이고. 그렇다면 그걸 왜 소유하려 할까? 그것은 소유가 안 되는데.’ 지금 들어보니까 그걸 소유한다기보다는 포착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차도 계속 미끄러지고 어긋나고 반복되고 번복되어서 계속 실패할 걸 본인이 알 거란 말이에요.

B 근데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그걸 느꼈다가 까먹고 느끼고 까먹고 그러는 것 같아. 순간적인…

(일동 웃음)

C 아 작가 자체가 망각이네. 망각의 동물로서 충실하네. 작품만 그런 줄 알았더니 사람이 그렇네. 그래서 이 운을 띄운 게. 빛은 기원이고 어떤 원초라는 은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 실패를 알면서도 계속 소유하려는 것인지 질문을 했는데, 이 스튜디오 설명에 또 이렇게 나와 있단 말이에요. ‘스튜디오는 무엇을 가질 것인지, 가질 수 있는게 무엇이고 절대 가질 수 없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며 이루어진다.’ 인데, 지금은 이 스튜디오가 몇 년 동안 운영되고 어떤 틀을 갖춘 상태잖아요. 그럼 박보마는 작가로서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 할까? ‘정신’의 소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스튜디오 안에서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니까 정신의 소유라면, 작가가 그 안에서 업으로 시공을 점유하고 즐기는게 스튜디오인데, 그럼 이곳에서 박보마는 무엇을 가질 수 있고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B 언어로 하자면,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지 못하는 스튜디오겠지. (웃음) 내가 그 주변 것들을 가지게 되겠지. 그 스튜디오가 가질 수 있는게 뭘까? …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다고 할 때… 더 예전으로 많이 돌아가서 생각하면 저는 (스스로의)작업 개념에 반한다고 생각해서 도큐멘테이션도 기피했고, 기록을 다 형식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쓴다던지 하는 자폐적인? 방어적인 태도가 있었어요. 혹은 그냥 작업 그 자체의 시간으로 완성되는 작업을 한다던지… 그런 맥락에서 계속 이어오는 형식의 작업이 스튜디오라는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에...

C 사라지는 게 완성이네.

B 그런 개념이지. 나의 방식은 제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방식이었어 내 결론은 그랬어. 내가 짬이 안 되어서일 수도 있고, 여기가 한국이라서 일수도 있고. 그래도 내가 추구하는 게 있으니까.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는 과정에서 또렷하게 존재하는 어떤 물리적 형식, 물리적 조건 등, 거기에 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성성이라고 느껴온 것 같아.

C 존재하는?

B 거기에 뭐가 형식이.. 핀 조명를 받고, 좌대가 있고, 캔버스가 걸려있고… 뭐가 있는 것 마냥. 하는 그런 모든 제도 형식을 그렇게 느꼈어. 원론적인 이야기이지.

C 그쵸. 거의 다 남성 제도의 산물이니까.

B 그래서 그런 걸 되게 의식했고, 그런 언어가 형식을 만들었어. 그런 자율성을 가지려고 하면서도 내 작업적 개념과 되게 닿아서 이런 스튜디오가 만들어졌는데, 뭘 갖냐…

C 가지고 싶은 건 있어요? 전자 피아노 산 것처럼.

B 스튜디오에서? 스튜디오에선 아름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C 스튜디오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곳이잖아. 나는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럼 보마는 결과도 아름답고 과정도 아름답고?

B 어. 그런 거야. 그런 것 같아.

C 아 그런 거?

B 어.

C 정말 어렵게 작업하시네. (웃음)

B 계속 꾀를 부리는 것 같아. 그 꾀가 나쁜 말이 아니라 내가 물질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용기내서 하고 있는 느낌이야. 내가 그전에 내 작업을 비물질적이라고 했던 게 정말 내가 비물질을 다뤄서 비물질적이라기 보다는 방식이 이렇게 물질이, 투출하지 않으니까.

C 응. 뭔가 많은 걸 가하지 않지.

B 응. 그렇다보니까, 권위적으로 있으려고 하진 않는. 그걸 나는 비물질적이라고 표현한 건데, 어느 시점에서 나는 물질을 다뤄야겠다고 판단을 했고, 이게 좀 슬프거든. 아무튼,

C 응.

B 그리고 지점토를 다루기 시작했지.

C 그 시점이라고 하면, 뭘까. 그 시점이 왜 왔을까. 그걸 물질로 적극적으로 끌어오려고 한 게…

B 그런데 물질은 나한테 엄청 남성적인 상징이고 영역이야.

C 그러니까 나는 이 물질을 도구로 이용해서 비물질을 표방하겠다? 음.

chapter 2.

C 보마는 작가로서 취향이라는 것이 미술에 미치는 중요성? 이라던가 미술은 취향의 싸움으로 귀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미술이 취향의 싸움이라고 했을 때, 그렇다? 아니다?

B 싸움이 취향 때문에 한 쪽은 이기고 한 쪽은 진다는 게, 한 쪽은 승승장구하고 한 쪽은 아니라는 말이야?

C 그렇죠.

B 그럼 아니라고 생각해.

C (웃음) 아 그럼 질문을 바꿔서. 작가들이 좋은 작가를 말할 때, 굳이 A급, B급, 잘 팔리고 안 팔리고를 나누지 않아도, 입이 모이잖아요. 정말 좋은 작업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런 방향에서 봤을 때 취향이 중요한지.

B 그러면, 중요해. 중요하다. 취향이라고 하는 건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사람도 그렇고 직관적인 것이잖아요. 취향이라는 말이… 나는 재능이랑 연결이 된다고 보는데, 취향은 재능에 속한 소스인 것 같아. 그 재능을 잘 쓰냐 못 쓰냐는 다른 문제지만, 그냥 봤을 때 반짝거리는 건 있죠. 커리어가 어떻든 있든 없든 간에. 딱 봤을 때 사로잡는… 더욱이 그게 엄청 중요하고 그게 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걸로 작업하잖아요. (웃음)

C 그럼 남의 걸 봤을 때, 판단에 취향이 개입되는 것 외에, 본인이 작업할 때도 그 말한 바를 중요시하겠네요?

B 중요시하죠. 중요시하는데, 어떤 것들은 거르지 않아도 그냥 그거여서 작업에서 선택하는 시각 언어들이 있잖아. 색이면 색… 이유가 없지만 뭔가 쿨하고, 그런데 그 쿨함은 나의 어떤 핵심과 닿아있어. 그게 단지 세련됐고 쿨해서 선택하는 건 아닌 것 같아.

C 그치. 그래서 재능이라는 거지.

B 그리고 다르게 말해서 나는 취향은,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생각해.

C 그쵸.

B 그래서 어떤 작가의 작업은 어떤 사람들은 세련되게 보고 쿨하게 보고 그렇지만 나는 아닐 수도 있는 거지. 가치관이 다른 거지. 조형언어도 다르고, 정치성도 다르고, 음과 양의 비율도 다르고…(웃음)

C 아니 이야기가 다시 커지잖아…(웃음) 넘어갑시다.

B 우리가 취향 때문에 만났잖아.

C 그쵸.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

B 이 이야기가 사실 2016년에 열었던 ‘실키 네이비 스킨’이라는 그룹전시를 준비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주제고, 개인적으로는 더욱 관심 있는 파트였어. 이때 즈음에 내가 찾았던 단어가 ‘유사함’인데, ‘similarity’, 이 단어는 또 내가 작업 안에서 분신술이라는 개념과 함께 스스로 다루고 주변에 계속 두며 보는 단어인데, 당시에 유사함 내지는 비슷함에 관심을 가졌던 건, 취향과 느낌으로 함께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 거. 그 언어가 뭔지, 작업 안에서도 사회적 관계에서도 중요한 태도고 가치라고 생각했고… 발화라는 면에서 어떤 존재들은 자신의 말을 발화할 수 없이 지내잖아 혹은 동일한 존재라고 해도 어떤 순간에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존재들은 무언가 느끼고 감각하고 그걸 말하고 싶어하는 데, 그걸 굳이 증명할 수 있는 어떤 틀이나 언어로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느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뭔가를 흐르듯 같이 하는 거. 그게 남성언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난 이 언어를 좋아하고, 우리가 그런 주어진 순간들을 향유하는 게,… 그러니까 너와 내가 뭘 얼만큼 가지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너 이 꽃 좋아해? 어 나도 이 꽃 좋아해. 이럴 때 느끼는 거 있잖아.

C 어. 알지. 난 알지. (웃음)

B 응. 그런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그런 면에서 취향이라는 것이 미술에서도 중요한 언어라고 생각해. 교환의 방식으로서. 어떤 여성 주체들의 교환방식. 그 자체, 향유 자체, 목적이 없음. 이런 거.

C 겹치고 비슷할 거라는 느낌으로부터 시작할 수는 있지만 사실 그것으로 다른 것을 덮으려고 한다면 뭔가… 굉장히 해로운. 유연해야하는 것 같아. 작가라고 해서 뭔가 어떤 스튜디오에서의 고독을 항상 견뎌야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런데 나는 이 작가적인 태도나 작업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한다는 사회적인… 그런 압박이 있을 텐데 그러면 작업도 그렇고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진부해지는. 그 반대의 가능성을 항상 개방해놓고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작가라면 스튜디오 문을 열어 놔야하는 게 아닌가. 때로는 문을 꾹 걸어 잠그고 참으며 해야하는 순간도 있을 테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보마가 작업을 진행하고 어떤 점에서 어떤 식으로 노출되는 지점을 정하는 데 있어서, 물론 그것조차 고민해서 어떤 결과로 비춰지는 거겠지만. 되게 여유롭게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어요. 은근히. 나는 그걸 느껴. (웃음) 누가 뭘 하고 있는 걸 볼 때 속으로는 이런 저런 판단이 드는데 보마 작업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고 이 자체인 것 같아.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상태에 머무르는 그냥 그 자체? 그러다가 알아서 떠나가는? 그래서 이 작업에 대해 어떤 판단이 유보되는 그 느낌이…

B 의도한 거야.

C 알아.

(일동웃음)

C 그런 의도하는 바를 느끼게 하는 것은 엄청 어려운 건데 그게 잘 되는 것 같아.

B 잘 되는 것처럼 느낀다니 다행이다 잘 안 되는 것 같은데.(웃음)

C 아니 그건 본인이 알기는 힘들지.

chapter 3.

B 여기 이 글(BOMA 인터뷰(를 가장한 글쓰기), 조이솝)의 *이 부분… 왜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나는 그게 취향이야.

C 취향이라기보다는 나는 안 해본 게 아닌데. 하고 나면 불편해. 내가 용서가 안 되고 찝찝해지는 거야. 그거를 바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이 드는 게, 어떤 기대나 의지가 타인에게 더 투영되기 마련인 것 같은데, 물론 사람에게 무너지고 기대는 순간들이 있긴 한데,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게 의미가 있고 값진 것이었는데, 알코올 날아가듯 삭- 사라지는 기분이야. 그러면 나는 스스로를 더 하찮게 여기는. 그러면 나는 말을 안 하지. (웃음)

B 나도 회피형이라서 사람을 안 믿어. (웃음) 사람의 심리라는 게. 나도 청개구리란말이야. 그래서 이러는 거겠지?

C 아, 좀 더 세련되게 말해봐. 세련된 거 좋아하시잖아요. (웃음)





이 인터뷰는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창작 레지던시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