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kte Erkennung Substanz Volumen Stimmung Substanz Reduktion

추상 인정 물질 볼륨 기분 필터 환원

Redaktion: Bomas Dueler (BCGM-Chefhändler und Schutzengel von Boma) 박보마 역.

박보마는 이 글의 필자로 미술작가 박보마의 수호천사이자 독일인으로 추정되는 보마스 듈러(Bomas Dueler)를 가정한다. 가상적 인물과 작가적 실제를 교차시키는 이러한 텍스트 구성은 관습의 균열 또는 상징성의 분열을 드러내는 박보마의 이미지 작업 세계와 상통한다. 감정의 전달 작용은 때때로 가짜 또는 가상을 실재화하곤 한다. 이 글이 현실과 상상 또는 문자와 이미지 사이에서 자아내는 착각, 혼동, 난해함, 모호함의 감정들에 휩싸이며, 관객과 독자는 해석 불가능의 지점에 존재하는 어떤 여성(적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독일어 원문 링크. —Ágrafa Society





보마스 듈러(Bomas Dueler, BCGM-Chefhändler und Schutzengel von Boma)가 작성한 독일어 원문 “Abstrakte Erkennung Substanz Volumen Stimmung Substanz Reduktion”의 첫 장과 마지막 장.

Bomas Deuler(BCGM), ‘추상 패배 구슬들’ 전시 홍보물 박보마는 2018년 수작업과 장식 스케일의 작품을 매개하는 ‘WTM decoration & boma’1를 출범시키고, 작가 소개란에 이 아이덴티티를 통한 작업이 fldjf studio2를 통한 비교적 비-물질적인 매체(웹, 디지털 이미지, 퍼포먼스, 설치)에서 ‘밀려난’ 물질적인 욕망을 다룬다고 표명한 바 있다. 박보마는 ‘만질 수 있는’, ‘오랜 시간의’, ‘인정 받는’,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제 자리가 있는’ 등의 맥락으로 물질이라는 개념을 운용해왔다. 우리는 멀리에 있지만 오랜 시간 이 메일을 통해 서신을 주고받았다. 지난 어느 메일에서 그/녀3는 요즘 WTM decoration & boma 의 boma로서 ‘아, 갑자기, 그냥, 푹 빠져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지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집에만 있을 게 심난했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고 Bomas Deuler가 되어 이번 BCGM의 온라인 프레젠테이션 ‘추상 패배 구슬들(BCGM, https://www.wtm-boma.com/bcgm, 2021)’을 기획했다. 그/녀의 추상적 형태는 2017년 전시, ‘화이트의 가짜 노력 유리 에메랄드 프리 오픈(아카이브 봄, 2017), ‘Shame on You(두산 뉴욕, 2017)’의 잇따른 전시의 설치 작업과 페인팅에 처음 등장했다. 각 전시에서 선 보인 <fldjf material suite: 진열되어 있는 구멍뚫린 유리 에메랄드>4, <Silverly 장식 세일 1900원(material suite 17-2)>5에는 불특정한 덩어리의 실루엣이 단색으로 채워져 있다. 유리 무드의 에메랄드색, 실버 느낌의 은색이다. 작업 노트에는 아래와 같은 언어를 짚고 있다.


‘추상적인’ 또는 ‘비정형적인’ 형태는 ‘추상적인 화면’에서 출발한다. 욕망의 대상이 되는 디지털 이미지 – 풍경, 인테리어, 사물 등-의 이미지의 중심 덮기. 없애기. 매끈하고 경계가 불명확한 스크린의 감각은 추상의 감각, 그리고 비-인간적인 이 물질 세계와 다르지 않다. 거울이 되어 내 앞에 허상을 비춘 그 자체로만. 물질 세계가 비어 있음을 증명하는 어떤 방식. 하늘이 잡히는 건줄 알았는데 안 잡히는 거라는 거야. 여기 꽉 차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에 가까이 가면 비워져 있어요. 여기가 꽉 차 있으니 보세요 : 남성성. ‘분위기’와 ‘느낌’은 가벼워서 쉽게 팔리고 쉽게 버려지며 심지어 부정된다. 복제와 향유의 주체는 희소가치가 된다. 하지만 구멍이라고 말하고 돌아보니 그것들이 채워져 있다. 그즈음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보내준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원한 적이 없는데 세계가 나에게 하늘, 감정, 물질, 시간…을 복제해주었고 또 빠르게 대체해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았으며 그것들이 나에게 주어졌다고 속지만 이내 내가 조정할 수 없는 영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다시 까먹는다. 나의 미술 실천은 이 배신의 감정과 수치심에서 출발했다.’


boma, <화이트멘 화병들>의 스케치 초안, 2017.

이번 전시에서 ‘연필을 쥔’을 담당한 boma의 말에 따르면 ‘추상 패배 구슬들’로 펼쳐진 결과물은 그 해의 잇따른 전시 이후 제 1세계 나라에 잠시 머물며 그린 드로잉, <화이트멘 화병들>에서 촉발된다. 그/녀는 어디선가 본 그럴 듯한, 고급의, 그/녀가 소유하고 싶다고 느꼈을 익명의 하얀색 화병을 그렸다. 마치 콜렉터가 된 듯한 느낌을 즐기며 하나씩 그려나갔다. 그리고 문득 그리고 있는 형상을 백인 남성처럼 느꼈다. 정확히는 화병의 실루엣 안에 백인 남성을 넣어서 봉인하는 것 같았다. 제목은 ‘화병들’에 마침표를 찍는다. 소유하고 싶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은 오래된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인간은 소유의 착각을 견고히 하는데 무자비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다. 그 착각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이제는 세계가 또 다른 하나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시간에 착륙하였다.텅 비어 있는 양자의 우주처럼 세계는 인간적이지 않은 듯하다. 장 보드리야르는 왜 세계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지 쓰고6 사라졌다. 아름다운 풍경과 순간에 매혹되고 그 시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전시되어 있는 화병을 향유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어떤 미술인은 이 미시적이고 영속적인 욕망의 사건들 속에서 인간적 한계7를 깨닫지 못하고 그/녀가 욕망을 느낀 대상과 재현물이 절대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방어기제로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아(잡는 척해)왔다. fldjf studio는 그 반사적 행위를 전시해왔으며 그/녀가 시도한 하얀색 화병 그림은 형태를 그리는 동시에 시공의 제한 없이 뭉개지고 녹아 되는대로 흐르던 중에 포착된다.

그/녀는 이후 ‘fldjf TVS figures(‘취미관’, 취미가, 서울, 2017)’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녀는 어느날 작업실에 앉아서 무언가 뭉뚱그린 형태를 즉흥적으로 그려나갔다. 각각 번호를 매겨 형상들을 아카이브하고 금색과 은색 시트지에 그리고 오려 카드로, 액세서리로 만들었다. 스티커의 알맹이를 다 쓰고 남은 테두리 부분 처럼 남아있는 구멍 뚫린 시트지는 투명한 아크릴 판에 붙여 오브제로 만들었는데, 투명한 아크릴이 보이는 구멍에 모두 ‘men 00(번호)’라고 쓰고 포장하듯 얇은 리본을 둘렀다. fldjf TVS figures는 이전 전시에서 선 보인 페인팅 속 형태들과 다르게 대상 자료없이 다소 ‘무책임하게’ 도출된 형태들이다. 매 순간 무한하게 다른 형상으로 변하는 기체 덩어리를 잡아 건지는 듯 단일한 형상으로 봉인했다. 감각을 통해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몰아沒我라는 상태의 힌트를 얻는다. 그/녀는 느낌과 감각을 따라 ‘추상’을 다룬다는 느낌에 도취되었다. 붓에 페인트를 묻혀 색을 칠할 때도, 지점토를 다룰 때도, 색연필, 오일 파스텔, 연필, 디지털 드로잉… 그 어떤 미디움이라도 손에 익어 감각과 일치하는 찰나에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과 몰입감을 느끼고 그 찰나는 존재의 영혼을 어른다. 하지만 ‘영혼Psyche’8은 너무나 가벼워 그 기체적 속성을 내어주며 마구 이용되어 왔으니 그/녀는 그/녀가 알고 있는 몰아의 가치를 부정하는 동시에 감히 이것이 추상인지 검열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꽉 차있는 그곳으로부터 몰입의 시간이 지나간 만큼씩 거리를 둔다. 그리고 그것을 묻어 ‘여기에 (네가 아는) 그 감정(환희)은 없음’이라는 패를 세우고 서명을 미룬다.

유아기의 아이들이 각종 미디움으로 구사하는 비언어의 미술적 화면, 혹은 그와 비슷한 비언어적인 사적인 찰나 그대로를 제외한 모든 제도 안의 추상적 시도는 민망한 게임이다. 인정받기 전까지 추상은 추상이 아니며, 추상은 제도 안에 안치되는 동시에 찬미하고 이해할만한 지위를 얻는다. 추상은 ‘추상 상태’이고 그것은 어쩔도리 없이 그럴듯한(authentic) 언어이며, 정제된 석유, 힘찬 악수, 이성이라는 다이아몬드, 나의 순수한 감정의 꼬추이다. 비단 미술 뿐만 아니라 현대의 메타적 추상의 시도는 몰아의 느끼함에서 도망친 다사다난한 시도와 궤도로 역사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힘의 논리에 따라 경외는 늘 한 방향이며 그 역사는 느끼한 꼬추들의 장에 포섭된 언어이다. 그런 이유로 동시대 제도가 현현하는 순간 그 가치는 술취한 남성이 길가에 노상방뇨를 하는 쿨함에 다름 없다. 뭐 어쩔 수 없다. 그/녀 역시 에센셜한 언어와 지속 가능한 추상의 세계에 매료되고 또 그에 상응하는 힘과 답례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욕망의 탐구와 그/녀의 실천은 복제와 익명의 문법이며 미술계 물질로서는 항상 실패했다. 실패는 실상을 비춘다. 그/녀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추상의 필요 조건은 그것의 외부이며 그/녀는 외부에 자리에 있(어 보인)다. 몰아의 흔적이든 재현이든 가능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이룬 시공간이 필요하며 미디움의 물질적 풍요에 빚을 진다. 그/녀는 외부로서 말하기 위해 스스로 매혹된 에센셜한 것을 따라하는 가짜가 된다.

물질적 욕망을 다루기 위해 출범한 ‘WTM decoration & boma(2018~)’는 지점토와 석고점토를 만지고 은밀한 밀도와 질감을 확인하며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건 안 봐도 물질로서 실패할 비디오’라는 마음을 열어보기로 했다. 손 안에 작은 덩어리로 주어진 점토라는 대상의 물질적 풍요를 즐기고, 즐기며 그/녀는 단일한 형상의, 부서지기 쉬운 반지와 펜던트를 만들었다. 그/녀가 확인한 은밀한 밀도와 질감은 장신구의 형식을 따랐다. 이 프로젝트는 콜렉션을 만들어 판매하고 증여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추상 패배 구슬들’은 실루엣이 된 구멍, 기체 덩어리에 입체감을 넣은 가짜 추상-비즈-펜던트들이다. 그/녀는 납작했던 형상들에 명암으로 부피를 묘사한다. 재현기술(art)은 그 목적에만 부합한다. ‘당신이 아는 그 언어’로 부풀기 위해, 추상인척 하는 만큼, 약간 도톰하게, 마치 폼 벽지처럼. 그/녀는 약간 도톰하며 도톰할 때 드러난다. 뭉개지고 와해되는 무언가가 실루엣 형태로 드러난 것은 언어로 응결되지 않아 싸게 팔리는 필터와 같은 그/녀의 영혼-느낌을 떼어낼 때이다. 그것들은 입체인 척하며 어딘가에 붙어 그럴듯하게 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다. 그/녀가 주의 깊게 관찰해온 사물들의 생식, 생존 방식과 비슷하게. 그/녀는 짧게 즐긴 풍요의 시간에 쉼표를 찍고 넘어간다. 그/녀의 의식은 영혼이라고 포장한 추상의 표면에 붙어 연명해왔다. 시작하지 않은 것, 태아의 상태,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 그냥 거기에 그렇게 있기. 거울처럼 비추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지대로서. 입체로서의 권위를 원하는 납작한 상태로만 있기. 실재가 제도나 형식 속에서 필연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비밀일까? 그/녀는 그/녀가 느낀 것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부풀리고 그/녀 스스로를 위한 위로와 도약의 공간을 영원히 비밀리에 마련한다. 그/녀는 생산하지 않는다.

2014년부터 시작한 fldjf studio는빛을 가지는’ 일이 쉽게 실패하고, 물질에서 미끄러지면서 가상의 회사, 스튜디오 형식과 웹 페이지 프레젠테이션 방법이 모여’ 설계된 작업이다. 그들은 실패한(hallow) 추상을 비췄다. 그들에게 ‘빛’은 고층 건물 저 높이 창문에 드문 드문 붙어 있기도 하고 하늘 저 멀리에 퍼져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땅에도 박혀있다. 그들은 빛을 덮어 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그 빛 덮개라고 부정을 연속한다. fldjf studio는 ‘Vicious Semi Virtual Suite & Service/AD’, ‘Natural Cover Making Semi-Virtual Studio’, ‘Natural and Original mood & Gesture making studio’, 등의 컨셉을 표방하며 fldjf studio의 벽, 프레임, 리본으로 감싼 평면 디지털 오브제 이미지(빛-덮개)를 약 1만여개 만들어왔다. ‘반사되는 빛’을 그 반사되는 물질에 기대어 포착하고 그것을 다시 덮는 과정으로서, 지루한 단색의 화면이 어디선가 루프(loop)한다. 분위기가 껍데기라면 그것은 영속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스튜디오를 시작하기 직전에 시도하고 실패한 작업 <창문 장식 window ornament’s time>(b painting, 갤러리 175, 서울 2014)은 색으로 빛을 표현할 수 없음에 대한 창문 장식 시리즈 이다. 이 기고장의 웹 페이지와 각자의 모니터와 휴대기기의 유리 스크린에 빌어 그 납작하게 눌려 말라버린 시간을 그 때의 이 빛으로 인도한다. 이 얇은 빛들은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각각 또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위에서부터) 박보마, <창문 장식 1>, <창문 장식 7>, <창문 장식 4>, <창문 장식 2>, <창문 장식 1: 앞의 하늘색>, 2014. 나무판, 종이 위에 오일, 가변설치.

그/녀는 세계에 그/녀가 다루는 물질적 욕망이 안전하게 존속할 수 있는 문법은 교환 가치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녀는 미디움을 통해 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것’으로 환원되는 것을 관찰한다.9 그/녀가 질척이지 않으므로 나는 그/녀의 에고를 지키기 위한 딜러이자 수호천사가 된다.

2021. 7. Bomas Deuler


박보마는 fldjf studio, WTM decoration x boma, qhak, receptionist R 등의 다양한 아이덴티티로 각자의 목적과 역할을 통해 발화한다. 최근 《Beige Men Vase & Smoking Free》(CAVA LIFE, 서울, 2020)를 선보였고, 2인 전시 《Defense…》(d/p, 서울, 2020), 《장식전》(오래된 집, 서울, 2020), 온라인 전시 《Girls in Quarantine》(2020)에 참여했다. 이 전시들을 기점으로 ‘Sophie Etulips Xlyang’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구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작가 웹사이트: www.wtm-boma.com/thepresent.

  1. WTM decoration & boma(2018~)는 fldjf studio의 탈-물질적인 작업 방식, 매체에서 탈각된 물질적 심상을 따라 쥬얼리, 조각, 오브제, 향, 일러스트, 등을 수작업, 수공예 개념에 초점을 두고 생산, 판매한다.

  2. fldjf studio(2014~)는 플드즈프 스튜디오 또는 리얼 스튜디오. 빛, 순간, 여성성을 옹호하고 기록하기 위해 고안된 이 반-투명한 스튜디오는 가상의 회사를 광고한다. fldjf studio를 고안한 박보마는 이곳에 소속된, ‘반사체’이자 ‘댄서 qhak’라는 가상의 캐릭터로 역할한다. 이 스튜디오는 세상에서 발견한 형식들의 표면을 취하여 가상화하고, 진짜라고 인정받은 것과 인정받지 못한 것들의 교환가치에 균열을 내는 것을 목적하며 동시에 작업을 통해 ‘전시하다’, ‘보다’라는 동사가 내포하는 ‘남성중심적’인 함의를 갱신하여 관객에게 제시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3. 그/녀는 깨지고 눌린채.

  4. fldjf studio, <fldjf material suite: 진열되어 있는 구멍뚫린 유리 에메랄드>, 2017. 종이 위에 오일, 글로스 미디움, 아일렛 펀칭, 리본, 황동, 레진 프레임 선반, 못, 가변설치. 2020년에 작품의 제목과 캡션을 수정하였다.

  5. boma, <Silverly 장식 세일 1900원(material suite 17-2)>, 2017. 종이 위에 은색 파우더, 포리졸, 마커, 연필, 파라핀 조각 프레임, 리본, 못, 가변 설치.

  6. 장 보드리야르의 마지막 출간 저서, 『사라짐에 대하여』(2007)의 원제목은 ‘왜 모든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가?(Pourquoi tout n’a-t-il pas déjà disparu?)’이다.

  7. 인간적 한계라 쓰고 ‘자신이 인간인줄 알고 인간적 한계를 느끼며’라 읽는다.

  8.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다. 이미지는 쉽다. 예수는 무지 잘 생겼다(?) | 영혼(靈魂): 1. 죽은 사람의 넋. 2.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 Psyche: 1. [그리스·로마신화] 프시케((Cupid가 사랑한 미소녀; 영혼의 화신)). 2. [p~; the ~, one’s ~] (육체와 대비하여) 영혼, 정신(cf. CORPUS). 3. 곤충, 나방의 일종

  9. 알렌카 주판치치, 『실재의 윤리: 칸트와 라캉』 , 이성민 옮김, 서울: 도서출판b, p. 244.




*이 글은 시각 예술 저널 웹진 세미나의 여덟번 째 이슈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