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의 가짜 노력, 유리 에메랄드 프리 오픈



윤율리


그대를 스쳐 반짝이며 강물 흐르는 곳에/ 숲 속의 새가 나무의 정수리를 넘어 날듯이/ 힘차게 나는 듯 다리 걸쳐 있고/ 마차와 사람들도 그 다리 울리고 있네

Wie der Vogel des Walds über die Gipfe fliegt/ Schwingt sich über den Strom, wo er vorbei dir glänzt/ Leicht und kräftig die Bruke/ Die von Wagen und Menschen tönt1



언젠가 추상의 세계에 매료된 것이 있다. 그 세게는 다양한 명사들의 목록으로 만들어진 진열장이었고 난폭하며 동시에 매혹적인 힘으로 가득했다. 사랑, 죽음, 시작, 끝 같은 단어가 손가락의 압력을 통과해 화면에 놓일 때, 언어는 세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함의 일부를 제 속에 지닌 듯 했다. 명사의 세계는 아름다운 만큼 바짝 말라 있었다. (흐릿한 추상명사의 긴 나열을 읽고 쓰는 일은 그것대로 얼마나 피로한 일인가?)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가 몸담은 미술의 세계도 대체로 비슷해서, 때로 그곳은 속이 텅 빈 밀랍인형들로 채워진 엄숙한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를 경도시켰던 명사의 세계가 특별히 선하거나 악하거나 더 위대하거나 속물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A와 B, B와 C사이에 질서를 구획하는 일은 언제나 마술적인 권능, 근원적인 폭력을 필요로 했으므로.


어느날 휠덜린의 시구가 스치고, 반짝이고, 흐르며, 구체적인 물질로 나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상한 해방감을 맞닥뜨렸다. 동사의 세계는 생경한 모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동사의 세계에서 주어가 될 수 없는 말의 서자들은 울리다tönt를 발음하는 순간의 혀처럼 둥글게 말리고 펴졌다. 얇게 펄럭이는 종이의 오른쪽 모서리를 구겨 접으며 나는 가장 먼저 박보마를 떠올렸다.


기억을 더듬어, 박보마를 처음 알게된 것은 2015년도 ‘비디오 릴레이 탄산’의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페이스북에서 fldjf studio의 계정을 본 기억이 있지만, 그저 조금 실험적인 미감의, 금방 사라지고 말 디자인 스튜디오일 거라 생각했다.) 박보마는 당시 <Villa-A>라는 작업을 선보였는데, 가상의 지중해 빌라에 대한 정보를 웹사이트에 업로드한 후 초대장을 소지한 참여자들에게 이를 소개 및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돌이켜보면 박보마에게 중요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접속경로가 아니라 지중해를 가득 매운 코발트 블루, 그리스의 외딴 화산섬을 연상시키는 연한 회색의 빛이 투명하고 매끈한 스크린 아래, 반짝이는 다이오드와 함께 누군가를 유혹하는 것이었을 테다. (탄산이 진행된 현장에서는 주로 웹 형식이 관객의 시선이나 동선을 구획하는 법에 대한 질문들이 오갔다.)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서울 바벨»(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2016)에서의 만남을 거쳐, «SILKY NAVY SKIN»(인사미술공간, 2016)은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굿-즈»와 «서울 바벨»의 박보마가 물질이자 반사체가 되는 dancer qhak으로 스스로를 출품했다면, , «SILKY NAVY SKIN»에서 나는 물질의 배합을 통해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는 광고 회사 fldjf studio의 잠재적인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고객’으로서 그간 내가 사용해 온 언어와 회사의 언어가 거의 일치하지 않음을 느끼고 그의 단어를 수집해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번역이라는 상호적인 통로로 나의 말이 함께 끌어당겨졌을 때 맛본 자유로움은 대단히 짜릿하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요컨대, 박보마의 작업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boma라는 최상위의 계정에 혼재해 있는 요소들을 추출해 다시 임의의 표 안에 정렬해 보는 것이다. 박보마가 작가로서 제시하는 키워드는(dacer qhak과 fldjf studio의 경우처럼) 특정한 구조적 위계를 가지고 몇 가지 조합으로 반복된다. 가령 이것을 도식화하면 [기분/하늘] -> {빛}, [반사체/광고]->{몰딩}, [우연/그라데이션]->{샘플}과 같은 알고리즘의 순서도가 나타난다. 박보마는 이 요소들의 혼합으르 통해 본래 그렇게는 존재하지 않도록 약속된 것, 그럴 수 없도록 명령된 것, 다르게 표현하면 추상의 세계에서 금지당한 어떤 물리적 상화/ 상태를 표면 위로 적출한다.


박보마에게 난해하다거나 ‘완결되지 않은 듯 하다’는 수식이 뒤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업은 미술의 오랜 명사적 관습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사는 사물을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페미니즘적인 미술이라 불러도, 시간에 대해 특정적인 미술이라 불러도, 실체로 구현되는 웹아트라 불러도 실은 아무 상관 없을 테다.


이 도록에는 박보마의 이번 전시 «화이트의 가짜 노력, 유리 에메랄드 프리 오픈»을 해설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들이 수록되어 있다 다섯 명의 조력자들은 각각 언어 바깥에서 환유되는 다른 감각을 제시하고(김소라, 송보경, 레버카 손), 다른 말하기의 방식을 고안하고(방혜진), 작업 프로세스의 일부를 특정한 개념으로 안전하게 전화하며 그에 대한 매뉴얼을 제시한다(김뺘뺘).


자, 회사는 묻는다. 이미지는 얼만큼 질긴가? 황금과 황금빛이 어떻게 다른가? 춤꾼이 답한다. 결과물은 기포inclusions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라지길 원한다!2





1.       프리드리히 휠덜린, 『하이델베르크』, 1798.
2.       박보마, 『about fldjf & qhak』 - https://fldjfs.wixsite.com/qhak/about

출처 : 아카이브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