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 나는 푸른 맛을 만지는 손

WTM decoration & boma <Rebercca လက် and The Cost>, 갤러리SP, 2019.6.20 - 7.4

이상엽





‘손’을 떠올리며

박보마가 언어로 빚어 만든 가상의 인물 ‘레버카 손(Rebercca လက်)’은 검은 피부에 에메랄드 빛의 깊은 눈을 가진 러시아 출생 남성으로, 그는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조향 아카데미에서 조향 코스를 끝마친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양쪽 팔을 잃게 된다. 신비하게도 레버카 손은 두 팔을 잃은 후에도 향수를 만들고, 스스로의 이름을 종이 한가운데 서명하기도 한다. 박보마는 ‘레버카 손’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 존재를 탄생시킨 이후 이 인물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손이 없는 사람이 만드는 향수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 손이 없는데 어떻게 향수를 만들 수 있을까? 손이 없어진 자가 여전히 손으로 무언가를 행한다는 이 기이하면서도 불가해한 설정은 박보마가 미란 보조비치(Miran Božovič)의 책인 『암흑지점』을 읽던 중 포착한 ‘환상통’의 주제와 맞물린다.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팔이나 다리에서 고통을 느낀다는 환영-수족 환각, 같은 뜻으로 환상통은 앞선 보조비치의 책 중 ‘한쪽 팔이 없는 자들의 환영 신체’ 파트에서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보조비치가 본문에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의 논의에 따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절단된 두 팔에서 여전히 고통을 감각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다른 두 팔’이 여전히 존재함을 의미한다. 절단된 손에 고통을 야기하는 실제의 손은 절단된 손이 아닌 관념 속의 손, 지성적 손이라는 것이다. 이 손은 물질로 가시화되어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 존재한다. 정신과 연합된 이 손은 상실한 손보다도 오히려 더 실재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두 물질적 팔과는 달리 우리의 다른 두 팔은 소멸 불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두 물질적 팔을 이미 상실한 이후에도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레버카 손의 손도 그렇게 존재 가능하다. 물리적인 양 팔을 잃고도 그의 관념적 손은 여전히 무언가를 마음껏 만지고 휘젓고 흘리며 감각한다.

푸른 미각: 블루 치즈와 청색 페인트

<Rebercca လက် and The Cost>를 소개하는 한 손 안에 꼭 들어오는 조그마한 크기의 팜플렛에는 레버카 손에 대한 짧은 소설 「The FSC Presentation Night」이 함께 담겨 있다. 이 이야기는 레버카 손이 새롭게 선보이는 향수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로 묘사된다. 레버카 손은 손님을 맞이하고, 향수 시향을 돕고,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가 전시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들은 앞선 소설 속에서 일어났다고 상정되는 프레젠테이션 이후의 풍경이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Room 1 바닥에 뚝뚝 떨어져 굳어진 짙은 푸른색 물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물감의 흔적과 경로를 따라 레버카 손의 존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실 이 물감의 정체는 박보마가 청색 페인트에 실버 파우더를 섞어 만든 후 이름 붙인 ‘The Rebercca လက် blue’라는 물질로, 소설 속 묘사된 프레젠테이션 당일의 레버카 손이 거닌 동선을 짐작해보는 주요한 단서가 된다. 바닥에 떨어진 물감의 흔적을 좇아 안쪽 공간인 Room 2로 이동하면 오른편의 새하얀 벽면 위로 동일한 청색 물감이 마구 찍히고 번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모양은 마치 블루 치즈의 단면을 잘라내 크게 확대시켜 붙여 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Room 2를 돌아 나와 복도를 지나면 마지막 공간인 Room 3가 나타난다. Room 3에서 청색 페인트 The Rebercca လက် blue는 굴곡진 투명 용기에 한 통 가득 담겨 채워져 있다. 그 옆으로는 한정 수량으로 생산된 레버카 손 롤온 퍼퓸오일이 흰색과 푸른색의 색조와 패턴이 가미된 패키지에 담겨 쪼르륵 진열되어 있다. 진열된 향수들과 한 발짝 크게 떨어진 곳에는 프레젠테이션에 온 손님들을 위해 준비된 핑거 푸드로 인공 색소가 가미된 하늘색 소스와 체리, 에메랄드 빛깔의 스파클링 와인이 놓여 있고 그 앞으로 연한 하늘색의 리본 다발이 기다랗게 풀려 늘어져 있다.

블루 치즈 같은 벽면, 청색 물감의 흔적, 하늘색 소스와 리본, 에메랄드 빛깔의 스파클링 와인. 시야를 사로잡는 푸르른 빛깔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감각으로의 확장을 불러 일으킨다. 앞선 소설 속 묘사가 가져다 주는 다음의 감각처럼. r은 청색 페인트를 꿀꺽 꿀꺽 들이 마시고 페인트는 r의 턱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프레젠테이션에 온 손님들을 위해 준비된 블루 치즈 아이스크림은 어쩌다 바닥에 떨어지고, 누군가는 또 이걸 밟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블루 치즈는 끈적하게 바닥 여기저기 달라 붙는다. 이 푸른 미각. 미술가 칸딘스키(Василий Кандинский)는 그의 작업 정신을 설명하는 한 책에서 색과 미각에 관한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는데, 그가 예로 든 사례는 드레스덴에 사는 한 의사의 보고였다. 이 의사는 정신적으로 민감한 한 환자를 관찰하며 그가 일정한 소스에서 언제나 푸른 미각을 맛보았다고 기록했다. 이 맛의 감각은 그에게 마치 푸른 색을 지각했을 때와 같은 것이었다. 칸딘스키는 이 사례를 보며 고도로 감각적인 사람들에게 영혼에 이르는 길은 매우 직접적이고, 또 영혼 자체도 매우 감수성이 예민하기에 어떤 미각적 인상도 즉시 영혼에 전달 가능하고, 또 거기에서부터 다른 감각기관에 전달한다고 보았다. 그는 색이 눈 뿐만 아니라 다른 물리적인 감각을 일깨워 주고 이 감각은 영혼에 예민한 영향을 준다고 여겼다. The Rebercca လက် blue가 가진 청색, 전시장 전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푸른색은 어쩌면 파란색(blue color)이 가진 보편적 상징들과도 잘 들어 맞는다. 하늘과 영혼을 의미하는 색, 이상적인 존재나 꿈을 그리는 색, 우수에 찬 색... 색은 아주 가시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추상적이다. 우리 눈앞에 현현하지만 시야 너머로 셀 수 없이 많은 상상을 그려낸다. 전시장에 남은 청색 페인트 흔적을 따라 아득한 레버카 손의 존재를 이리저리 그려보는 일처럼.




0%의 박보마와 100%의 박보마 사이

<Rebercca လက် and The Cost>는 공식적으로 WTM decoration & boma가 기획한 프로젝트이다. 여기서 WTM은 White Men의 축약어로, 박보마는 백인 남성이 갖는 이미지로 하얗고 푸른 것이 가미된 물성을 떠올리며 임의의 백인 남성 이미지를 손에 잡히는 물질로 만들어낸다. 비물질적인 상상 속 백인 남성의 이미지는 박보마가 빚어 만든 하얀색 물체들로 대상화되며 소유할 수 있는 물질로 치환된다. 이에 따라 WTM decoration & boma는 박보마가 가진 이상적인 꿈이나 가상의 것을 일정 부분 실현시키고 소유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된다. 가령 빛과 하늘을 갖기 위한 시도로 fldjf studio의 이름으로 꾸렸던 이전의 이벤트들처럼 말이다. 박보마는 WTM decoration & boma에서 주로 석고 점토를 사용해 하얀색 바탕에 푸른 보석을 박아 넣은 쥬얼리, 몸체가 하얀 오브제나 장식 등을 제작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시장 곳곳에는 WTM decoration & boma의 손길로 만들어진 쥬얼리, 하얀 오브제, 미완성의 재료들이 놓여 있다. 어쩌면 전시장을 이루는 전반적인 색조가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압축되는 것 또한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은 WTM decoration & boma의 정체성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WTM decoration & boma든 Rebercca လက်이든 fldjf studio든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다 박보마의 손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거나 아주 뒤로 물러나 있다. 박보마는 왜 드러나지 않기를 택했을까? 이에 대해 박보마는 현실의 것과 가상의 것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발생하는 어색함에 대해 말한다. 하늘, 빛, 서구의 것 등 현실에서 갖지 못하는 이상적인 무엇에 대한 박보마의 갈망은 그녀의 이름이 아닌 다른 가상의 회사, 브랜드, 인물의 이름으로 대체될 때 해소되는지도 모른다.


한편, 전시이자 팝업 스토어인 <Rebercca လက် and The Cost>는 교란의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가령 관람 동선을 안내하는 팜플렛에서 관람객에게 앉아 보기를 지시하는 소파는 실제 공간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팜플렛 속 소설에는 손이 없는 레버카 손과 주로 손을 사용해 육체 노동을 하는 손님들이 대비되어 등장한다. 전시장에서 판매되는 레버카 손 향수는 공간 곳곳의 뿌려져 있는데, 이 안에서 우리가 맡는 향은 다른 향수 제품의 향과 섞인 것이다. 두 가지의 다른 향이 공기 중에 수시로 교차 분사된다. 전시장에 방문한 누군가는 이 향기가 마음에 들어 실제로 향수를 구입한다. 이때 구매자는 제품이면서 작품인 향수를 구입하게 된다. <Rebercca လက် and The Cost>는 전시이면서 동시에 팝업스토어로 기능하기에 Rebercca လက် 향수는 ‘제품’이면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되는 ‘아티스트 굿즈’이면서 ‘작품’인 세 개의 지위를 함께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진행한 WTM decoration & boma를, 주인공인 Rebercca လက်을, 작가 박보마를 모두 동일한 주체볼 수 있을까? WTM decoration & boma가 만든 쥬얼리와 장식들, 레버카 손이 바닥에 흘린 청색 페인트 흔적은 모두 박보마의 손에서 탄생했고, 박보마는 레버카 손의 움직임을 대신해 적절한 곳에 페인트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렇다면 이 굳은 물감은 진짜 레버카 손이 남긴 게 아니기 때문에 거짓 흔적이 되는 걸까?


다시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으로 돌아가서, 환상통과 더불어 전개되는 내용 중 영혼이 어떤 물체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기 위해서 꼭 그 물체 속에 거주할 필요는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구르둘루’라는 인물이 소개된다.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소설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인 구르둘루는 스스로를 오리, 물고기, 배나무 등과 동일시한다. 구르둘루는 외부세계의 모든 물체를 자신의 일부로 간주한다. 배가 고픈 구르둘루는 나무의 입과 자신의 입을 혼동하며, 죽을 먹기 위해 죽을 떠서 자신의 입이 아닌 나무의 구멍에다 집어 넣는다. 구르둘루는 그는 주변의 모든 물체들 속에서 자신을 본다. 구르둘루는 누군가가 “치즈야, 시냇물아” 하고 부르면 “저 여기 있어요!” 하고 대답하지만, “구르둘루야” 부를 땐 답하지 않는다. 구르둘루는 자신의 신체를 제외한 모든 물체 속에 거주하는 정신이다. 어쩌면 박보마가 가진 정신은 레버카 손이라는 가상의 인물 속에 편안히 거주하고, 푸른 페인트의 흔적 속에, 어떤 임의의 브랜드나 가상 회사의 몸체 안에서 그 이름으로 불리고 머물 때 더 안정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사진: WTM decoration & boma 홈페이지(https://www.wtm-boma.com), '블루 치즈'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