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보다 느리고 사물보다 빠르게 당신에게 닿는 것


이한범




소리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느리다. 하지만 사물의 속도보다는 빠르다. 여기서 사물, 소리, 빛의 속도를 비교하기 위한 기준 되는 공간이 있다면 그건 그것이 존재하는 자리와 당신 사이의 거리이다. 속도는 그것들이 자기의 자리로부터 당신에게 와 닿는 시간을 말한다. 하지만 각각의 다른 무게를 고려해 본다면, 그것들이 당신에게 주는 충격은 엇비슷할지도 모른다. 이 글은 아주 느리게 오는 사물과 단번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빛 사이에서 어물쩍 당신에게 다가가는 소리의 애매한 시간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사물을 위해 마련된 무대이기도 하고, 되울려 돌아오는 빛의 반향(echo)이기도 하다. 물론 향기처럼 은은하게 진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형들 지난 가을 이상엽이 기획한 남산 숲속에서의 전시 ⟪살아있는 관계⟫는 분명 박보마의 작업에 관한 중요한 것, 그러니까 그의 사물이 장소를 어떻게 가지게 되는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하루 동안의 전시 ⟪살아있는 관계⟫에 박보마는 그의 여러 자아 중 쥬얼리, 장신구, 공예품 등 물질적 사물을 만드는 WTM decoration & boma의 이름으로 참여했고 정하슬린의 그림과 함께였다. 이들의 사물과 그림은 등산객들이 오가는 길 언저리에, 수풀 속에, 나무 사이에 놓여 있었고 숨어 있지는 않았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심코 지나 칠 만했다. 이 전시는 여러 의미에서 작품을 ‘발견’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스레 능동적인 관람이 필요했다. 걸음을 이어 나갈수록, 작품을 인지하기 위해 한껏 예민하게 곤두세운 관찰은 작품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이 놓여 있는 공간, 그리고 그것이 무엇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했다. 박보마의 사물은 작은 점토 조각들, 리본 한두 가닥, 모형 나비, 마구 색이 칠해진 구겨진 종이처럼 아직 무엇이라 이르기 어려운, 무언가가 되지 않은 아주 원형적인 상태의 어떤 것들이었다. 형태를 결정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이 실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사물은 나무에 난 생채기, 오래 전 버려져 덤불 속에 자리한 색 바랜 종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돌무더기와 닮아있었고 나는 종종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이 작품은 아닌지 리플릿을 보며 확인하곤 해야만 했다. 점점 더 작품과 자연의 구분은 희미해져 갔고 작품은 공간을 통합적으로, 그러니까 이질적인 것들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인식하게끔 안내했다. 그의 사물들은 숲과 편안한 연대를 이루고 있었다. 내게 보였던 건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안내하는 공간의 유동적인 관계들이었다. 그것은 박보마의 사물이 자신의 원형을 기억하는 일을 수행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하며 산을 내려 왔다. 한동안 박보마의 원형적 사물들에 대한 상념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그것의 여러 장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주로 전시장에서) 보아왔던 그의 사물들이 사실은 어딘가로 부터 이주해 온 것이라면, 만약 그 사물들이 숲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숲’이라 이를 수 있는 신비스러운 장소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그러면서 나는 박보마가 여러 이름으로 만드는 이미지와 사물들, 다른 이름으로 수행하는 행위가 사실은 무언가를 만들어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총체성 안에 들어 있던 것을 발견하고 떼어 오는 것, 즉 있었던 그대로의 것을 잡아채어 데려 오는 일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레디메이드의 유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데려오는 것은 제품이나 물건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요컨대 어떤 순간의 빛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며 그가 다루는 이동의 범주는 지리적, 제도적 경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에 의해 생겨나는 경계와 구분 사이를 가로질러 사라진 것을 옮긴다. 자연히 그의 잡아채기는 레디메이드가 수행하는 의미 체계나 인식의 혼동을 야기하기보다는 고통스러운 기억 상실증을 자각시킨다. 그것은 눈앞에 있는 것을 무엇으로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혼란으로, 없어야 할 것이 남아 힘을 발휘하는 불편함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종의 애도를 요청한다. 여기서 정치가 발생한다. 이 정치는 보기보다 무척 복잡한데, 그가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잡아채 데려오는 것은 사실은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는 원형적인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의 정치는 전선을 형성하는 정치가 아니라 존재의 있음과 없음 자체를 묻는 정치다. 얼마 뒤 나는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영화 <운디네>를 보게 되었는데, 페촐트가 영화를 통해서 하려는 것, 그리고 박보마가 이미지와 사물을 통해서 하려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원형적인 것이 어떻게 여전히 아직도 가까이에서 반복되고 있고 깊숙이 침투해 작동하는 지를 살피는 일이다. 여러 이질적이고 세속적이며 균질화된 표면적인 형식들에서 원형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페촐트에게는 그것이 ‘피닉스’나 ‘물의 정령’같은 신화라면, 박보마에게 그것은 플라톤의 동굴 안에서 일렁거리는 그림자의 끊임없는 물결, 움직임이다. 원형의 편재와 반복은 일종의 진실이며, 그 진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움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박보마는 언제나 이 지점에서 실패를 얘기한다. 자신은 원형을 이미지와 사물로 잡아 채 데려오는 ‘척’하는 것이며 그 실패를 전시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그가 매혹되고 욕망하는 ‘추상’이라고 하는 원형적 세계는 물질계의 어떠한 제도나 도구를 통해서도 환원되지 않고 재생산되지 않으며 이미지화 되지도, 사물화 되지도 않는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것에 성공했다고 말하며 추상을 물질화하고 이미지화 하는 것은 남성적 제도다. 때문에 박보마는 진정으로 추상을 욕망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외부’에 위치시킬 수밖에 없다.¹ 동굴 안에 일렁이는 그림자의 물결을 재현하거나 그것의 이데아를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남성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면, 박보마는 오직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며 바깥과의 관계성만을 문제시하고 그 관계를 확정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증명할 뿐이다. 이를테면 박보마는 불가능성을 진실의 한 형식으로서 여긴다. 불가능성의 전시는 진실에 관한 진술이다. 불가능성을 조건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박보마 자신 또한 지금 여기의 시간에 속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보마는 ⟪살아있는 관계⟫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어폰을 끼고 자신의 사운드 작업 ⧼a clue of truth: Now is yet to come because... once it was delayed ⧽를 들으며 숲길을 걷도록 했다. 이미 먼저 숲을 걸으며 녹음한 소리를 기반으로 여러 소리를 겹쳐 약 35분 길이의 사운드 스케이프를 재구성했다. 하지만 이 사운드 스케이프는 현재의 ‘나’가 마주하는 현실과 결코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심장 소리 같은 저음의 가쁜 리듬감은 발걸음의 속도보다 훨씬 빨랐고, 물소리나 바람소리는 내가 보고 있는 것과 관련 없이 들려왔다. 무엇보다 전체 관람 시간은 35분의 러닝타임보다 짧았다. 나는 남은 뒷부분의 소리를 산 아래 벤치에서 들어야만 했다. 이 작업은 현실의 어느 짧은 동안의 흔적을 담고 있고 내가 경험하는 현실을 닮아 있지만 결코 그것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종종 아주 잠깐씩 현실과 포개지는, 소리가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만남의 순간이 있었지만 금세 멀리 떠나갔다. 이 소리 작업은 오직 시차만을 증명할 뿐이었다. 때문에 소리는 무대가 될 수 있었다. 그 무대는 엇비슷한 현실을 다시 반복한다. 박보마의 작업에서 이미지, 사물, 행위 등 가시적인 것이 아닌 소리가 자꾸만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그것이 원형적인 무언가를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원형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가 되기도 한다는 점 때문이다. 소리는 그의 작업 안에서 다른 것들보다 기능적이다(그의 작업 안에서 이와 엇비슷하게 기능하고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향기’일 것이다).² 그의 소리는 항상 뒤에 물러나 있고, 곳곳에 숨어 있다. 사물과 빛에 비하자면 한껏 웅크리고 있다. 그것은 그것만의 속도를 가지고 온다. 멜로디 앞서 박보마가 실패와 불가능성을 진실의 형식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조금 더 섬세히 하자면 그는 불가능성을 단언하고 그 문을 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성이 남긴 장소에서 부단히 대안적인 존재론과 언어 체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그의 작업 전체는 그 불가능성을 놓지 않으며 끊임없이 사물이, 이미지가, 신체가 어떻게 등장하고 사라져야 하는지를 시험하는 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테다. 그러한 작업 중 하나가 바로 멜로디이다. ⧼meladies : Pour la illusion de l'Odyssée, la mère d’ Atom et la princesse dans la glace ⧽는 박보마가 오래 전(자신의 말에 따르면 10살 때인 1998년)부터 지속 해 온 것으로, 그는 이를 “순간의 감정과 정서를 붙잡기 위한 방법이며 그것에 대한 애도”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귀를 울리고 지나갔으나 뒤늦게 알아챈, 그리고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기억과 그러한 자기 자신의 초상”이기 때문이다.³ 말하자면 멜로디는 구체적인 말로 설명될 수 없고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하기의 형식이자 방법인 것이다. 멜로디 작업들은 적은 수의 음계로 구성된 단순한 선율이 천천히 흐르는 짧은 길이의 음악으로, 콧노래와 같은 입 안에서 맴도는 웅얼거림, 흥얼거림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박보마가 줄곧 말하는 ‘분위기’를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포착하기 힘든, 지속하지만 사라진 것 같은 그런 존재감과 힘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사적인 감정으로 환원되는 세계의 사적인 풍경이 아니라, 아감벤이 말하는 유아기의 경험적 실재일 것이다. 박보마는 최근, 그가 2010년 진행했던 이벤트 ⟪당신이 용감하면 와서 나비와 놀아주세요⟫에서 쓰인 스크립트를 멜로디 위에 얹어 여러 장소에서 송출의 형태로 재구성한 작업 ⧼당신이 용감하면 와서 나비와 놀아주세요... 파동 1/n ⧽을 기획자 용선미, 이솜이와 협력하여 퍼폼콜렉션시스템(PCS)을 통해 발표했다. 나는 우연히도 다른 길을 가던 중 이 작업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묘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메아리치듯 여러 번 울려 퍼지며 내용 모를 말을 읊는 목소리가 도심 건물 옥상 정원을 건너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으로 들렸고 자연스레 거기로 이끌려 갔다. ⧼당신이 용감하면 와서 나비와 놀아주세요... 파동 1/n ⧽은 아주 한정된 시간 동안만 이루어진 작업으로 곧 다시 오래된 대기 속으로 사라졌다. 백색 노이즈가 섞인 멜로디는 지난 합성의 시간 그러니까 결코 처음의 그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고, 동시에 반향 되어 반복되는 목소리는 그것이 언제든 다시 드러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했다. 이 작업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형태로 유동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해 그것이 자율적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상상처럼 보였다. 퍼폼콜렉션시스템에서 제안한 30여명의 작업들 중 ‘소장 불가능’인 것은 박보마의 작업이 유일했다. 박보마의 추상은, 다시 한 번 스쳐 지나가듯 우리에게 드러날 수는 있어도 여전히 사물화하고 고정시킬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시차적으로 당도할 때만, 무언가에 부딪혀 되울릴 때만 성사되는 일이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그는 불가능성을 조건삼아 세계의 잊힌 원형과 충실히 온전히 함께하기를 바란다. 한없이 가벼운 빛과 한없이 무거운 사물을 데려오기 위해 다시, 시차를 증명하는 소리는 종종 그의 사물들과 이미지를 위한 무대가 되기도 한다. 온라인 웹페이지 전시 ⟪추상 패배 구슬들⟫이 그러했고, 최근 오픈한 그의 가상 회사 섹스 컴퍼니(Sophie Etulips Xylang Co.)가 그러하다. 여기서 멜로디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 플랫폼의 ‘분위기’ 혹은 ‘느낌’으로서, 텅 빔을 감추지 않으며 존재한다. 기업의 테마송과 다르지 않은 멜로디는 곧장 라이브러리 뮤직(library music)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브러리 뮤직은 TV, 라디오, 영화와 같은 상업적 미디어의 부흥과 함께 생겨난 음악적 영역으로 방송사나 콘텐츠 제작자, 기업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음악을 미리 만들어 판매하는 생태계에서 유통되고 감상된다. 구매자는 서사를 환기시키는 소리, 특정한 행동이나 분위기를 묘사하는 소리 등 자신에게 필요한 소리를 고르고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용한다. 그래서 라이브러리 뮤직의 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분위기와 정서가 가득하다. 멜로디, 상실한 것에 대한 우물거림과 시차적인 기억을 무대 삼은 섹스 컴퍼니는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곳일까? 무엇이 되었든, 그곳은 언제나 텅 비어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실패를 감수하며, 불가능성을 증명하며.




1. 박보마, 「추상 인정 물질 볼륨 기분 필터 환원」, 시각예술 웹저널 『SEMINAR』 8호 (http://www.zineseminar.com/wp/issue08/pakboma/).


2. 박보마가 개인전 ⟪화이트의 가짜 노력, 유리 에메랄드 프리 오픈⟫(아카이브봄, 2017)에서 사용한 향이 어떻게 강력하게 ‘다른 장소’를 생성하고 일시적으로 관객의 현재를 흔들어 놓았는지를 다음의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이한범, 「벼룩과 곡예사의 줄타기를 생각하면서: 장영혜중공업과 박보마의 전시, 그리고 전소정의 작업에 대한 단상」, 『오큘로』 온라인 리뷰 (http://www.okulo.kr/2017/03/review-001.html)


3. 작가 웹사이트의 소개문(https://www.boma-reflects.me/bio).